시각장애 아동의 배움을 함께 걷는 길 – 교육 소외를 넘어 포용의 모색
시각장애 아동의 ‘점자’와 ‘보행’은 단지 생존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만나는 눈이자 존재를 확장하는 도구다. 하지만 이 중요한 두 기술의 교육은 아직 우리 교육제도나 사회 지원체계 전반에서 제대로 대응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K행복나눔재단이 개최한 ‘2025 점자 보행 가을 운동회’는 단지 일회성 행사가 아닌, 교육 사각지대를 향한 적절한 응답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 이면에는 어떤 사회구조적 맥락이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제도의 빈틈 속 장애 아동, ‘점자’와 ‘길’을 잃다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 아동은 전체 장애 아동 가운데 약 1.2%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보건복지부, 2023). 이는 매우 적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소수가 처한 어려움은 ‘비가시적 약자’가 겪는 대표적인 구조를 드러낸다. 초등교육 단계부터 이들에게 특화된 점자 교육이나 보행 훈련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은 외부 기관이나 NGO, 부모 개인의 노력에 의존하고 있다.
2022년 교육부 장애학생 교육 통계에 따르면, 시각장애 아동의 점자 문해력은 일반적인 인지 발달보다 훨씬 느리게 형성되며, 보조도구와 교육자의 투입 없이는 일상생활 자체가 제한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러한 기초 교육을 충분히 제공하는 공공 시스템은 부족하고, 부모 역시 정보를 얻기조차 어렵다. 이처럼 ‘공적 미비’는 ‘가정의 부담’과 ‘아동의 소외’로 전이된다.
프로그램이 삶이 될 때 – 민간의 실험과 적정 해결
이번 점자 보행 운동회를 포함한 세상파일 프로젝트는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민간에서 직면한 문제에 적극 개입한 사례다. ‘점프’ 일일 학습지나 아동 맞춤형 흰 지팡이 개발, 1:1 맞춤형 교육 지도안 제공은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실생활에 맞닿은 적정 기술 기반 교육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168명의 점자 학습 아동과 20명의 보행 훈련 아동은 작지만 구체적인 변화의 증거다.
특히, 이번 운동회처럼 아동과 부모가 함께 참여한 단체 활동은 두 가지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첫째, 시각장애 아동의 학습 동기 중 하나는 또래와의 상호작용이므로, 놀이 기반 경험은 효과적인 교육의 확장이라 볼 수 있다. 둘째, 부모의 경험 공유와 네트워크 형성은 장애 아동 재활과 자립 과정을 공동체 차원에서 지지하는 기반을 마련한다.
제도는 얼마나 따라오고 있나 – 교육과 복지의 간극
그렇다면 국가 시스템은 이 변화를 반영하고 있을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은 모든 장애학생에게 적절한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되, 실제 제공되는 커리큘럼은 지역과 기관에 따라 편차가 매우 크며, 특히 저연령 시각장애 아동의 점자 교육은 법의 사각지대에 가까운 상태다.
또한 보행 교육은 교통복지 영역과도 맞닿아 있어 복지부, 교육부, 국토부 간의 정책 협업이 필수적이지만, 부처 간 연계가 미흡한 실정이다. 보조기기 지원은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시범 운영 이후 제도화되지 않은 프로그램도 많다. 모든 아이가 출발선에서 평등한 기회를 가지도록 ‘공공 책임’이 전제되어야 한다. 민간 기여가 공공 불균형을 대체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장기적 로드맵이 시급하다.
포용적 미래로 가는 작지만 실질적인 실천들
한국 사회는 최근 장애 인식 개선과 통합교육 강화에 힘쓰고 있으나, 여전히 ‘물리적 배리어’를 넘어 ‘심리적 배리어’를 극복해야 한다. 시각장애 아동을 단지 보호 대상이 아닌 적극적 학습 주체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편, 시민사회와 일반 가정도 ‘배려’보다 ‘포용’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시점이다.
정기 페스티벌, 부모 교육, 또래 통합 활동 등은 교육의 외연을 확장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교사, 복지사, 정책 담당자는 제도 설계 시 당사자의 현장 경험을 적극 반영해야 하며, 기업은 사회책임차원에서 지속가능한 교육 지원 모델을 고민할 수 있다.
누구나 혼자서는 길을 찾기 어렵다. 점자와 보행이라는 이름의 두 개의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읽는 이 아이들이 더 많은 손을 맞잡고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연결할 수 있는 조각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포용사회로 가는 길은, 결국 ‘작은 동행’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