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문화 접근, 단순한 배려를 넘어서 – 여가권 실현에서 사회 통합의 가능성을 찾다
시각장애인 4명이 성남시한마음복지관 점자도서관에서 기타를 배운다. "기타로 여는 나의 하루"라는 이 프로그램은 외부의 후원(HD현대 1% 나눔재단)을 받아 운영되었고, 단순한 음악 강습 이상으로 평가받는다. 참가자들은 "기억을 소환하는 감각", "가족과의 새로운 대화", "잊었던 열정을 되찾음" 등의 소감을 나눴다. 이는 취미가 가진 힘 이상의 사회적 함의와 제도적 물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장애인의 문화·여가 참여는 여전히 구조적 배제의 대상이다. 이번 기타교실 사례는 이 시급한 문제의 틈새를 비추는 작은 빛이다.
장애인의 ‘문화 격차’, 보이지 않는 차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5조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예술·체육 활동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명시한다. 그러나 현실의 문화 공간과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장애인 접근성’에 소극적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2023)에 따르면, 장애인 10명 중 6명이 최근 1년간 문화생활을 전혀 하지 못했으며, 가장 큰 이유로 ‘접근성 부족’과 ‘프로그램 부재’를 꼽았다.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여가권은 여전히 제2의 권리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접근 편의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감수성’의 부족과 연결된다. 단순히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기획단계부터 장애인이 활용할 수 있으며 정서적, 인지적으로 의미 있는 참여가 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한마음복지관의 기타교실은 참가자 각자의 속도와 감각을 존중하는 ‘맞춤형 진행’으로 이런 접근 가능성을 보여줬다.
‘교육’이 아닌 ‘삶’의 권리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
기타교실은 단순한 기능 습득이 아니라, 참여자의 기억과 삶을 소환하는 도구였다. 한 참가자는 "50년 전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감탄했고, 또 다른 이는 "아들과의 대화 주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는 문화 활동이 장애인의 사회적 고립, 정체성 박탈, 세대 단절을 완화하는 중요한 매개임을 시사한다.
많은 복지 프로그램이 노동·자립·재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화는 그 다음 순서로 밀려 있다. 그러나 문화적 권리는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엄성과 평등한 시민성을 확인하는 중추적 행위다. 특히 중장년층 이상 장애인에게는 예술 활동이 과거 자신과 현재를 연결하고 삶의 질을 회복하는 중요한 회로가 된다.
제도는 가능성을 어떻게 담을 수 있는가?
지역 복지관이나 점자도서관 중심의 이러한 시도는 가치 있지만, 전국적 확산을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의 ‘자발적 요청권’ 제도화 △장애인여가활동 전문 예산 신설 △문화예술인과 연계된 시민강사 육성 △지역 문화재단과의 통합 유관 기획 등이 필요하다.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은 이미 장애와 문화를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연결하는 정책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예술향유권을 복지의 일부가 아니라 ‘문화복지권’으로 독립하여 제도화하는 시도들이 그 예다.
일상의 틈에서 피어난 변화 가능성
이번 기타교실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사회적 약자의 참여 공간을 열기 위한 변화는 대규모 투자보다 ‘감각적 기획’과 ‘다층적 협력’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성남시한마음복지관의 경우처럼 점자도서관, 문화강사, 후원재단, 행정망이 연결될 때, 소외된 이들의 문화권이 하나의 ‘생활 공간’으로 실현된다.
질문은 여기에 남는다. 전국 각지의 장애인복지관과 문화시설은 이러한 ‘참여 가능한 예술’의 감각을 얼마나 내장하고 있는가?, 시민 각자는 공동체 안의 ‘문화적 배제’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마무리하며
이번 사례는 시각장애인이 주체로 참여한 ‘예술과 기억의 재구성’이다. 단순히 기타를 익힌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삶의 새로운 연결을, 누군가는 오래된 자아와의 재회를 경험했다. 문화적 형평성과 생활권으로서의 예술은 여전히 대비 상태에 있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분명 사회통합을 이끄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정책 설계자에게는 문화복지가 사치가 아니라 필수임을 환기하고, 시민사회는 소소한 감각의 기억에 공감하며 지역 프로그램에 관심 갖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문화 접근성은 결국, 사회적 상상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