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의 이공계 진로, 왜 조기 체험이 중요한가 – 성별 직업 격차 해소를 위한 작은 시작
과학자의 꿈을 품은 여학생들이 대학 연구실을 누볐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이 주관한 이번 ‘진로·진학 멘토링 프로그램’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여학생들의 이공계 진출을 현실적인 여정으로 이끄는 중요한 실험실이었다. 덕성여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 대학 내 연구실에서 실제 전공 실험과 멘토링을 체득한 이들은 과학계 진입 장벽에 한 걸음 다가섰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을 실행할 구체적 경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사회 구조적 의미를 지닌다.
성별 따라 다른 진로 궤도, 제도로 좁히지 못한 격차
여성과학기술인의 비율은 여전히 눈에 띄게 낮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이공계 학부생 중 여성 비율은 약 30% 수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서 여성은 “선택하지 않는다기보다, 선택할 기회를 덜 제공받는다.”는 분석이 유효한 이유다. 사회적 고정관념과 진로 경험 부족이 여성의 이공계 진출을 제약하는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WISET의 프로그램은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시도다.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실질 체험과 대학생 멘토와의 심층 교류를 통해 학문과 진로의 연계를 자연스럽게 연결짓는 방식이다. 전공 체험, 멘토링, 진로설계 툴(W브릿지 앱)까지 삼중 구조로 설계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대와 성별, 진로 인식의 차이
대입을 준비하는 청소년과 그 부모 세대는 진로에 대해 각기 다른 우선순위를 갖는다. 일부 학부모는 여전히 수학, 물리와 같은 전통적인 STEM 전공이 “남자아이들의 영역”이라는 암묵적 믿음을 공유하고 있고, 이는 여학생이 과학을 좋아하더라도 ‘실제 전공으로 삼을 수 있는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 Z세대로 불리는 오늘날의 청소년은 정보 접근성이 높고 다원적인 진로에 열려 있지만, 구조적 관성과 주변 롤모델 부족으로 실행력에 한계를 겪는다. 때문에 성별과 세대 간 진로 인식의 간극을 좁히는 중간 매개체로서, 이 같은 실습 중심 멘토링은 더욱 유효하다.
해외 사례와의 비교: 조기 STEM 진로교육의 효과
미국, 독일 등은 초등 고학년부터 ‘STEM 캠프’나 ‘여성 전용 과학체험프로그램’을 정규 교육과 연계해 운영한다. 대표적 사례인 미국의 ‘Girls Who Code’는 중학생 여학생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제공하며, 참여자의 90% 이상이 관련 전공을 선택하거나 이공계 분야로 진출했다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도 WISET 외에도 여러 대학, 지자체 주도로 유사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나, 지역 격차, 정보 비대칭, 프로그램 지속성 부족 등으로 한정된 효과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도권 중심 운영이 반복되면서 농어촌 여학생은 여전히 기회 격차에 놓인다.
진로교육, 일회성 경험 넘어선 정책 연계가 필요하다
현재 여학생 대상 STEM 프로그램은 대부분 방학 기간을 활용한 단기 도입이다. 그러나 이공계 진로 결정은 오랜 시간 누적된 경험의 결과다. 따라서 초중등부터 연속적 프로그램으로 설계되고, 진학과 취업까지 이어지는 체계적 플랫폼과 연결되어야 실질적인 성별 격차 해소 성과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WISET의 ‘W브릿지’와 같은 플랫폼이 학교 교육과 정책에 보다 긴밀히 연계될 필요가 있다. 또한, 학교 밖 청소년이나 정보 소외 지역 여학생을 위한 온라인 실험실(V-Lab On) 콘텐츠 확장도 의미 있는 과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작은 실천
이번 프로그램은 하나의 학기 동안 일어난 작은 움직임이지만, 단 한 명의 여학생이 자신의 진로를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던 계기라는 점에서 변화의 본질에 가깝다. 사회 구조 안에서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더 이상 특권이 아닌 모두의 가능성이어야 한다.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을 위한 제도, 기업, 학교, 가정의 역할을 끊임없이 재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직업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는가? STEM 진로에서 시작된 이 작은 변화를, 성별 불균형 해소와 성장을 함께 꾀하는 사회적 방향성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까?
지금 가능한 행동은 있다. 각 학교가 지역 과학관, 연구기관과 협력해 맞춤형 멘토링을 정규 교과 외 활동으로 도입하거나, 기업이 지역 STEM 멘토단을 운영할 수도 있다. 시민으로서 부모와 교사는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금 너의 흥미는 무엇이니? 그걸 탐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