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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쉬었음 청년이 말하는 멈춤의 의미

오늘은, 쉬었음 청년이 말하는 멈춤의 의미

쉬었음 청년이 겪는 멈춤의 의미 – 사회적 연결과 제도적 공백 사이에서

청년실업이나 일자리 문제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쉬었음 청년’이라는 용어는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최근 사단법인 '오늘은'과 '열고닫기'가 발표한 「2025 쉬었음 청년 연구보고서」는 이들 청년을 단순히 ‘포기’하거나 ‘나태’한 존재로 보는 시선을 전환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88.4%의 쉬었음 청년이 스스로를 ‘일시 멈춤’ 상태에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단지 사회 진입을 위한 ‘호흡’ 중인 존재일지 모른다.

쉬었음 청년: 단절이 아닌 전환의 시간

'쉬었음'이라는 말은 통계청 분류에서 취업준비나 긴 휴식 상태를 포함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숫자 이면의 삶을 보여준다. 응답자들은 대부분 이 시기를 포기가 아닌 재정비의 과정으로 인식했다. 특히, 연구는 청년이 ‘사회와 얼마나 연결돼 있다고 느끼는가’가 쉬었음 기간, 행복도, 재진입 의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회적 연결성이 높다고 느끼는 청년은 그렇지 않은 청년에 비해 평균 1개월 먼저 일하는 상태로 전환하며, 행복하다고 느끼는 비율도 2배 이상 높았다.

눈여겨볼 점은 지역과 연령에 따른 차이다. 25~29세 연령대에서는 포기 비율이 가장 높았고, 서울 외 지역 청년의 경우 포기율이 3배 가까이 높았다. 정책적으로 청년 지원이 대도시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과 맞닿는 대목이다. 청년들의 지역 불균형도 단절감을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멈춤'의 시간

현행 청년고용지원정책은 주로 ‘취업의지를 가진 청년’, 즉 경제활동 참가 의지가 뚜렷한 대상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대표적인 정책인 'K-디지털 트레이닝', '청년내일채움공제' 등은 주로 취업 준비생과 근로자에게 적용되며, 쉬었음 청년처럼 경제활동에서 일시적으로 이탈한 계층은 제도 혜택에서 소외되기 쉽다.

이러한 간극은 쉬었음 청년이 겪는 심리적 고립과 연결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와 연결돼 있다고 느끼는 청년은 쉬었음 상태에서조차 ‘행복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 이는 정책 대상자 선정 기준을 직업 여부가 아니라 사회적 연결성과 심리적 회복력을 중심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제언으로 이어진다.

연결과 회복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의 과제

쉬었음 청년이 겪는 ‘단절’은 단지 고용의 문제가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관계의 부재와 심리적 지지 기반의 취약성이 자리하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한 청년은 “무언가에 도전할 때 혼자보다는 둘이나 셋일 때 더 용기를 낸다”고 말했다. 이는 심리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프로그램, 커뮤니티 기반의 활동, 지역 청년센터의 기능 강화 등 사회적 복원력을 키우는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과 맞닿는다.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이와 유사한 관련 대응이 진행 중이다. 예컨대 핀란드의 ‘청년보장제도(Youth Guarantee)’는 교육, 고용, 심리치료를 연계하여 청년의 사회 진입을 다층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 역시 단기 고용지원 프로그램을 넘어서 연속적·회복 지향적 프로그램을 고민할 시점이다.

함께 묻고 실천할 과제

쉬었음 청년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일시적인 멈춤’에 대한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회가 청년에게 요구하는 끊임없는 경쟁과 결과 중심의 서사는 그들의 회복 가능성을 ‘좌절’로 낙인찍게 만든다. 공공, 기업, 지역사회는 멈춰 있는 시간을 존중하는 문화 확산과 함께, 관계 기반의 젊은 층 지원 플랫폼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결국 질문의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청년이 쉬는 것을 ‘문제’로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우리는 벗어났는가? 그리고 멈춤 이후의 ‘연결’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쉬었음 청년의 회복과 재시작을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시스템과 연대 속 과제로 바라보는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청년은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잠시 숨고르기 중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 숨을 존중하고 온기 있게 이어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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