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추진 함정 시장의 구조 변화 – ‘모듈형 고압 드라이브’가 만드는 해양 방산의 기술 격차
HD현대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고압 추진 드라이브’가 단순한 제품 출시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는 뚜렷하다. 이는 국내 조선·해양방산 산업이 기술 선도권을 직접 확보하는 첫 사례 중 하나로, 전기추진 함정이라는 차세대 군수 플랫폼의 경쟁 구조를 재편할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MMC(Modular Multilevel Converter) 구조의 활용은 앞선 전력전자 기술의 응용이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일부 선진국만이 보유한 고부가가치 산업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한다.
조선 산업의 디지털 전환 방향 – 해군력을 좌우하는 전동화 경쟁
기존 조선 산업은 에너지 효율 개선과 친환경 연료 도입 중심의 전환이 이루어져 왔으나, 해양 방위 산업에서는 더 적극적인 전기화(Electrification)와 저소음화, 스마트 제어 시스템 구축이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전기추진 함정은 디젤엔진보다 진동과 소음이 적고, 작전 중 추진 속도의 정밀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략무기 운용에 최적화된 솔루션으로 주목받는다.
극한의 운용 환경에서 고신뢰성 구동을 요구하는 군수 해상 장비는 일부 유럽 국가와 미국 중심의 독점적 기술시장이다. 이번 HD현대의 발표는 이처럼 폐쇄된 산업 생태계 안에서 독자 기술 개발을 통한 ‘자립화’의 이정표로 읽히며, 글로벌 조선방산 시장에서의 포지셔닝 전략 재정립에 기능할 수 있는 기술 축적이다.
MMC 기반 고압 드라이브의 기술 경제학 – 왜 ‘모듈형’이 핵심인가
MMC 구조는 개별 전력 모듈의 조합으로 시스템을 형성, 동작 중 정비성이 우수하고 출력 품질을 개별 모듈 단위로 제어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고전력 시스템에서 20% 이상 경량화가 가능하다는 점은 실제 함정 설계의 유연성과 운영 효율을 좌우할 수 있는 전술적 요소다.
Gartner와 산업연구원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향후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분산형 모듈 시스템"은 플랫폼화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작용하며, 함정뿐 아니라 민간 선박, 친환경 해양 플랫폼 등으로 응용이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선체 설계, 동력계통 통합, 배터리 기술과의 융합 전략까지 포함해 선박 제조업의 새로운 아키텍처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해양 방산의 글로벌 경쟁 구도 – 자립형 기술이 시장 진입의 열쇠
현재 MMC 기반 기술은 유럽과 미국 내 소수 기업만이 상용화에 성공했을 만큼 높은 기술장벽을 자랑한다. HD현대가 이번 육상 실증까지 완료함으로써 기술 검증을 마쳤다는 점은, 단순 국방 수요를 넘어 동남아, 중동, 유럽 신규 방산시장 진입의 발판이 될 수 있다.
특히 세계 해군력 현대화 추세에 따라 전기추진 시스템을 완비한 '미드사이즈 함정'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고정밀 장비, 탄도 미사일 플랫폼, 수중 드론 대응 체계 탑재에 적합한 기술 업그레이드가 요구되고 있다. 국내 기술로 이를 직접 공급할 수 있는 조선사가 등장했다는 점은 K-방산 수출 포트폴리오의 전략 다변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기업과 산업계에 주는 실천적 시사점
HD현대의 사례는 기술 국산화가 단순한 제조 역량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레버리지임을 잘 보여준다. 이는 조선, 방위산업뿐 아니라 자동차, 반도체, 의료기기 등 다양한 고부가가치 제조업군에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
현업 담당자들이 참고해야 할 체크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우리 제품 혹은 서비스는 글로벌 기술 독점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가?
- 모듈형 전환 또는 시스템화(Systemization)를 통한 차별화가 가능한 구조인가?
- 자립형 연구개발을 위해 산학연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향후 주의해야 할 리스크는 글로벌 인허가 리걸 장벽, 해외 기술 제휴처와의 IP 분쟁, 고가 장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정책 지원 미비 등이다. 국산 기술을 보유하더라도 상용화와 국제 시장 진입을 위한 금융·제도적 인프라와의 연계 전략이 병행되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