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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감성이 이끄는 무광 시대

조용한 감성이 이끄는 무광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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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광택 시대가 온다 – ‘탈광(脫光)’ 트렌드가 말해주는 소비자의 감각 변화와 브랜딩 전략]

2024년, 소비자의 눈은 더이상 반짝임에 머물지 않는다. 유광(有光)의 화려함보다 무광(無光)의 부드러움이, 자극적 사운드보다 절제된 감각이 중심이 되는 '탈광(脫光)' 트렌드가 다양하게 확산되고 있다. 표면이 빛을 반사하지 않는 ‘매트 질감’은 단순한 디자인 요소를 넘어, 소비자 감성의 변화와 연결된 ‘감각적 미니멀리즘’의 상징으로 읽힌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변화의 흐름은 무엇일까?

■ 매트의 부상 – 표면 위를 덮는 쿨한 정서

LG전자의 무광 가전 ‘오브제컬렉션’은 최근 출시한 신형에도 여전히 ‘무광 질감’을 고수한다.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라인업 역시 빛이 반사되지 않는 톤으로 세련된 이미지를 구성한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제네시스, 현대차, 벤츠, 테슬라 등이 속속 ‘무광 외장 컬러’를 채택하며 프리미엄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무광은 시각적 자극을 거두고 시선을 머물게 하는 ‘감각적 정지 효과’를 제공한다.

이러한 디자인은 단순히 미적 취향의 변화가 아니다. 산업디자인계에서는 “무광의 질감과 중성색 계열은 소비자의 감각을 부드럽게 자극하고, 고급스럽고 차분한 만족감을 준다”고 진단한다. 이는 팬데믹 이후 과잉 정보와 시각 피로에 지친 소비자의 내면 욕구가 표출된 결과이기도 하다.

■ 탈광은 ‘탈자극’을 향한 몸짓

디자이너 김차용 교수는 “광택이 있는 표면은 눈에 확 띄지만, 무광은 감각적으로 더 오래 머문다”고 말했다. ‘빛나는’ 것이 아닌 ‘느껴지는’ 것에 집중하는 새로운 감각 소비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젊은 소비자일수록 브랜딩보다는 촉감, 소리, 무드 등 물리적 자극을 세밀하게 인식하며 판단한다. 그래서 조명도 간접광, 음악도 미니멀, 향기는 무향 혹은 뉴트럴 향이 각광받는다.

Z세대는 감각 기준이 ‘화려함’보다 ‘진정성’에 가깝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브랜드보다는 맥락 있고 조용한 경험을 선호한다. 이 트렌드는 글로벌 뷰티 브랜드나 하이엔드 F&B, 텍스타일 등에서도 ‘무광=노이즈 제로=고급’이라는 등식을 강화시키고 있다.

■ 로고도 조용해지고 있다 – 정체성의 재설계

무광 트렌드는 단순 제품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 아이덴티티 전략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재디자인된 글로벌 브랜드 로고들을 보면 ‘플랫(flat)’, ‘미니멀’, ‘톤다운’의 세 가지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페라리, 마세라티, 포르쉐와 같은 자동차 브랜드부터 버버리, 프라다, 입생로랑 등 럭셔리 브랜드까지 광택감이 빠진 로고 디자인으로 정제된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다.

이는 브랜드가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강렬하니,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동시에 이것이 ‘기능적 미니멀’에서 ‘감성적 미니멀’로 진화하는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감각의 피로가 가속화되는 시대에서 소비자들은 더 깊고 조용한 울림을 줄 수 있는 브랜드에 끌리고 있다.

■ 미래의 감각은 얼마나 '조용'해질까?

이 같은 감성 미학의 흐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와 WGSN는 팬데믹 이후 ‘센서리 웰빙(sensory well-being)’이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고 지적한다. 이는 단순한 힐링을 넘어, 감각적으로도 ‘소음 없는 제품’이 소비자의 심리적 안정에 기여한다는 분석을 포함한다.

앞으로 음향기기의 무음 모드, 텍스타일의 부드러운 촉감,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제품 등이 더욱 등장하게 될 것이다. 브랜드는 ‘튀지 않더라도 기억에 남는’ 정서적 깊이가 있는 경험을 설계해야 하며, 과시 대신 감성의 잔향을 남기는 마케팅 전략이 요구된다.

이제는 유려한 포장보다 감각적 여운이 브랜드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다. ‘탈광 트렌드’는 단순 유행이 아니라, 미래 소비자를 이해하는 통로이자 문화 소비의 태도 변화를 가늠하는 민감한 안테나다.

무광의 흐름 안에서 소비자는 더는 “보여지는 것”에 감동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라인과 촉감, 온도와 조명,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맥락을 궁금해 하고, 그 위에서 자신만의 해석과 정서를 누리고 싶어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단순히 ‘빛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감각의 깊이를 디자인하고, 조용한 감성 속에 매력을 숨기는 전략이다. 브랜드든 개인이든, 이 변화에 적응하는 이들이 새로운 선택의 기준을 선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