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법률 서비스와 사이버 보안의 교차점 – 기술 진화가 던지는 사회적 질문
새로운 시대의 법률 환경은 데이터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최근 앤더슨 컨설팅(Andersen Consulting)과 미국의 e디스커버리 및 데이터 법률 서비스 전문기업 헤이스택아이디(HaystackID)의 협업은 이러한 흐름의 상징적 사건이다. 기업과 로펌, 정부기관이 디지털 정보를 중심으로 민사소송, 규제 대응, 내부 감사 등을 처리하는 구조가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 변화는 기술과 윤리, 노동, 법률 제도의 경계를 재구성하며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데이터 중심 사회, 법률 서비스도 바뀐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만큼 법률 및 규제 대응에서 데이터 분석 능력은 핵심 자산이 되고 있다. 전통적인 서류 기반의 소송과는 달리, 오늘날의 e디스커버리는 수백 테라바이트 이상의 이메일, 채팅, 파일 로그를 분석해 적절성과 법적 책임을 검토하는 기술적 작업이다. 헤이스택아이디는 이러한 과정을 AI 기반 플랫폼과 전문가 팀을 통해 구현해 Fortune 100대 기업과 정부 기관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포렌식과 자동화된 리뷰 기술은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높이지만, 동시에 프라이버시 침해와 알고리즘 편향 같은 새로운 위험요소도 내포한다. 업무의 자동화는 리뷰어, 사무직 전문 인력들의 일자리를 축소시키기도 하며, AI에 의한 ‘합리성’이 법적 평가를 대체하려 든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사회는 기술을 얼마나 따라가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과연 이러한 기술 기반 법률 제도를 얼마나 잘 수용하고 있을까? 한국의 사법 시스템은 아직까지 e디스커버리와 같은 디지털 소송지원 체계가 정착되어 있지 않으며, 관련 법률도 미비한 상황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EDRM(Electronic Discovery Reference Model) 같은 표준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국내 민·형사소송 절차는 여전히 서면 기반의 증거제출과 검토 방식에 머물러 있다.
이에 따라 다국적 기업이나 디지털 플랫폼 기반 기업은 해외 규정 준수를 위해 해외 자문에 의존하거나, 국내에서는 불완전한 법률 환경에 의한 리스크를 감수하며 기업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IT 보안, 개인정보보호가 얽힌 문제에서는 관할권과 적용 법률이 충돌할 여지도 크다.
기술과 윤리의 균형,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법률 기술의 발전이 단순 효율성 향상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수반하게 만들기 위한 제도적 노력도 필수적이다. GDPR이나 미국의 CCPA 등은 기술 혁신이 시민의 권리와 공공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견제장치를 마련하고자 한다. 한국도 2021년부터 시행 중인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바탕으로 AI 처리 및 데이터 이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일부 다국적 기업은 법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윤리적 회피'를 감행하거나, 사회적 합의 없이 민감 데이터를 학습 자료로 활용한다. 데이터 독점과 사이버 보안 위협은 기술 기반 법률 시스템의 이면을 만드는 위험 요인이다.
교육과 사회적 인식도 함께 변화해야
법률 기술의 발전은 단지 기업과 정부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를 다루는 모든 시민과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회는 디지털 리터러시뿐 아니라, 디지털 정의(digital justice)에 대한 인식 수준도 함께 향상시켜야 한다. 예컨대 법률대학이나 공공기관 종사자 대상의 교육과정에서 e디스커버리, 데이터 거버넌스 등 현실 대응형 교과과정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업은 디지털 소송, 사이버 보안 리스크 대응에 있어서 단기 효율성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신뢰 기반의 거버넌스 전략을 동반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기술의 발전이 곧 사회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법률 시장에서의 AI와 데이터 기술 적용은 효율성을 넘어서, 사회적 신뢰와 윤리를 기반으로 얼마나 설계되고 운용되는지가 관건이다. 시민과 정책 입안자, 기업 모두가 이 기술 변화 속에서 어떤 기준을 세우고,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둘 것인지 끊임없이 논의해야 할 것이다.
개인 실천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데이터가 어디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자신이 참여한 서비스나 조직의 법적 책임 구조를 인식해보는 것부터가 출발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이 법과 윤리를 대체하지 않도록, 모두의 감시와 참여가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