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균형발전과 영화가 만나는 자리 – 지역에서 피어나는 삶의 서사에 귀 기울일 시간
2026년 1월, 전라남도 목포의 겨울은 단지 계절의 변화를 담고 있지 않았다. 한때 ‘끝의 도시’로 불리던 이곳이 다시금 나라의 중심 대화에 서게 된 것은, 지난 22년간 꺼지지 않은 약속과 시대의 질문 덕분이었다. 바로 국가균형발전선언이라는 이름의 약속 말이다. 그리고 그 약속이 22주년을 맞이해 목포에서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 행사는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가’와 ‘균형’ 그리고 ‘삶’이라는 가치가 오늘 우리가 사는 방식과 어떻게 서로를 비추는지 묻는 일종의 사유의 장이었다. 영화, 학술, 포럼, 시민 참여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장르는 달랐지만 모두가 한 가지 질문에 연결되어 있었다.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림자와 빛이 겹쳐진 스크린 속 지역의 얼굴들
이번 기념행사의 중심은 ‘사람사는세상 영화제’였다. 429편의 응모작 중 16편이 엄선돼 목포극장의 암전 속에 그 존재를 드러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들이 특정한 장르나 유명한 배우를 내세우기보다는,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굴곡을 잔잔하게 비추었다는 점이다. 변영주, 이란희, 이종필 감독과 은유 작가가 심사를 맡은 이 영화들은 삶을 바라보는 감각, 지역의 시간을 감각하는 태도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 영화제는 단순한 상영의 장이 아니었다. 작품이 끝난 후 이어지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그 어떤 포럼보다도 뜨겁고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지역은 더 이상 행정구역이 아닌, 한 사람의 존엄이 지켜지는 ‘삶의 무대’로 다시 읽혔다.
청년이 묻다, 도시가 응답하다
학술 프로그램에도 젊은 목소리가 중심에 섰다. 청년 연구자들이 전남의 도시재생 사례를 꺼내 보이며 묻는다. “재구성된 도시가 그곳 주민의 기억을 품고 있는가?” 물리적인 변화보다 중요한 건 결국 그 도시에 살아가는 인간의 경험과 감정이라는 점에서, 이 논의는 공동체를 재설계하는 새로운 감각과 윤리를 제시한다.
또 다른 포럼에서는 광주전남 통합 이후의 지역 생태계, 커뮤니티 시네마, 문화예술의 지속 가능성이 논의됐다. 여기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흐름은 하나다. 지방은 더 이상 중심부에 ‘따라가는’ 공간이 아니라, 고유한 방식으로 ‘자기답게’ 중심을 구축해가는 공간이 되고 있음이다.
참여의 문화가 지역을 바꾼다
눈에 띄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시민들이 남긴 자신의 삶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균형발전 지도’였다. 홍보부스가 단순한 스티커 존이 아닌, 시민들이 ‘살고 싶은 지역’을 공유하는 공론장으로 기능한 것이다. ‘노란가게’의 굿즈 이상으로 가치 있었던 건, 이 지도 위에 적힌 구체적인 시간들, 개인의 기억들이었다.
이는 문화 콘텐츠가 단지 즐기고 소비하는 대상을 넘어, 우리를 서로 연결하고 정치적·사회적 목소리를 모으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한다. 문화는 결국 느끼는 방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역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이번 목포에서의 기념행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새겼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문화는 그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지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수도권 중심 사고에서 서서히 이동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에 둔 감각이다.
도시와 나, 지역과 시민이 서로에게 거울이 되려면 우리는 지역의 이야기에 더 섬세하게 귀기울여야 한다. 그렇기에 당신의 도시, 당신의 동네, 혹은 어릴 적 살던 마을에 대해 오늘 밤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
“나는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어떤 장면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번 주말에는 지역 영화관에서 로컬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는 것도 좋겠다. 당신이 사는 공간에 문학보다 더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