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장애예술 제도에서 문화로 확장

장애인 문화예술, 제도에서 예술로 확장되기까지 – 포용사회 실현을 위한 예술의 역할

동아시아 4개국이 참여한 ‘장애인문화예술 동아시아 포럼’은 그 자체로도 상징적이다. 장애인이 예술의 주체로 자리 잡는 것은 단순한 복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개인의 사회적 주체화이자, 공동체의 포용성 수준을 되묻는 지표이기도 하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예술적 실천을 통해 아시아 각국의 장애인 문화정책을 비교하고, 포괄적 생태계 조성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제 질문은 예술이 아니라 제도와 사회가 이 흐름을 어떻게 따라갈 것인가에 있다.

복지를 넘어 ‘문화권’으로 – 장애예술을 바라보는 관점 변화

한국은 2015년 장애인문화예술원 설립 이후 2017년 관련 예산 직접 교부, 2021년 전담기관 지정 등 제도적 기반을 다지며 일정한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대개 복지 관점의 예산 분배로 작동했다는 한계도 크다. 즉, 창작의 자율성과 예술적 다양성보다는 ‘지원’과 ‘보호’에 방점이 찍힌 구조였다.

상대적으로 일본은 복지에서 문화융합으로 관점을 바꿔가고 있고, 싱가포르는 장애예술인을 전문 예술가로 키우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대조적으로 한국의 장애예술인은 아직도 “지원대상”인가, “예술가”인가라는 이중적 질문 앞에 놓여 있다.

실제로 OECD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문화예술 분야 전체 공공투자 비중(GDP 대비 기준)에서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으며, 그중 장애 관련 문화예산은 더욱 한정적이다. 장애예술 정책이 문화예술 정책과 유기적 연계를 이루지 못한 결과다.

“축제는 끝나고, 현실은 계속된다” – 행사와 법 사이의 거리

이번 포럼에서 다뤄진 ‘포용적 축제 사례’는 정책과 실천의 간극을 상징한다. 한국에는 장애인 대상의 특화 축제가 일부 존재하지만, 여전히 행사성 일회성에 그치거나 시민 접근성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 반면, 홍콩 노리미츠(No Limits)나 중국의 루미너스 페스티벌은 장애예술인과 일반 예술인이 동등하게 창작하고 관객과 교류하는 장으로 설계되었다.

이 차이는 기획 철학의 차이이자 사회 인식의 결과다. 한국에서 장애예술이 ‘보기 좋은’ 전시용으로, 혹은 특정 기관의 활동 보고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성과 주류 문화 예술계와의 연결성이 필요하다.

예산과 제도가 예술적 표현의 자유와 기회로 이어지기 위해선, 법적 장치 또한 강화되어야 한다. 현재 장애예술과 직접 연결된 법령은 제한적이며, 다수가 문화예술 또는 복지법 내의 조항에 불과하다. 미국의 ADA(미국장애인법)처럼 예술계 접근권을 명시한 주요 법규가 부재함은 제도의 불완전성을 보여준다.

전문가에서 시민까지 – 장애예술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 온도차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에게 있어 예술은 ‘표현’ 이전에 ‘존재의 언어’다. 이에 반해 일반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예술의 완결성 혹은 감상 대상 관점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예술시장의 평가 구조, 언론 노출, 교육 현장에서의 다루는 방식 모두가 영향을 미친다.

사회 전반의 인식은 변화의 초입에 있다. 대규모 예술제에서의 참여, 방송 출연 확대, 디지털 플랫폼 확산 등은 긍정적 흐름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장에서는 “지원은 받지만, 전시되지 않는다”, “활동은 허용되지만, 기회는 평등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예술계 내부에서도 장애예술을 ‘분리된 장르’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와 달리 통합형 전시공간, 공동 창작 프로젝트 등 포용성과 협업 기반의 실험은 아직 제한적이다.

예술이 묻는 질문, 제도가 들어야 할 답

이번 포럼의 세 번째 세션이 지향하는 지점은 바로 이 간극의 해소다. 싱가포르 ART:DIS의 안젤라 탄 대표는 생계 기반을 뒷받침하는 정책과 예술가로의 성장 기회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지원자’가 아닌 ‘전문 예술인’으로서의 주체화가 핵심이다.

해외 사례에서처럼, 장애예술단체의 법인화, 작가의 경제적 자립, 예술교육 시스템 내의 기회 보장 등은 장기적 생태계를 위한 기반 조건이다. 그동안 간과되었던 것은 제도보다 삶의 지속 가능성이며, ‘기회 균등’을 넘어 ‘결과에 대한 공정성’까지 고민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예술은 개인의 표현이며, 사회의, 법의, 제도의 거울이다. 장애예술이 각국의 경계를 넘어 소통과 협력의 장으로 확장되는 오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예술 무대에서 사라졌을 때, 누가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가?”

궁극적으로 장애예술은 장애인을 위한 예술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감각적으로 다르고, 표현 또한 다르다. 시민, 정책 담당자, 예술가, 사업자… 각자의 자리에서 장애를 '극복'이 아닌 하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생태계의 일부로 설계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는 포스터 한 장, 축제 며칠로는 닿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첫 발걸음을 내딛는 단단한 계기는 분명히 되었다. 이 흐름이 제도와 문화, 그리고 사회적 감각의 변화를 동반한다면, ‘장애예술’이라는 단어 앞의 수식어는 언젠가 사라져도 괜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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