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구시설관리공단, 온기박스로 복지의 경계를 넓히다

지방공기업의 복지 실험 – '온기박스'와 지역돌봄의 재구성

서울 금천구시설관리공단이 최근 관내 취약계층 노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기박스' 기부는 단순한 계절성 나눔을 넘어, 공기업 역할의 재해석과 지역 공동체의 복지사각 해소 실험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부 행사는 단발성이 아니라 여름철 '폭염키트' 기부에 이은 일종의 연속적 사회공헌 프로젝트였으며, 임직원 주도의 '걷기 챌린지'와 연계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일상과 지역, 공공과 시민 참여를 엮는 흥미로운 시도가 엿보인다.

이 작은 기부 운동은 단지 방한용품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부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지방공기업의 역할 확장, 고령화 대응, 참여 기반 복지모델이라는 측면에서 여러 사회적 질문을 되짚게 한다.

노인을 위한 공공 돌봄의 빈틈을 누가 채우고 있는가

한국은 2025년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로 진입하며, '초고령 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중 약 50만 명이 절대 빈곤 상태에 있으며, 특히 수도권 저소득 노인의 상당수가 기초생활보장제도 밖에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정부나 공공기관이 직접 돌봄 사각을 메우는 시도는 기존 행정체계의 한계를 보완하는 유의미한 실천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온기박스'와 같은 지원 방식이 공적 보장의 부재를 민간 자발성에 기대는 구조로 흘러가는 데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사적 기부와 임시적 지원이 빈곤구조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이유다.

공공의 책임 감각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금천구시설관리공단은 주차장, 체육시설, 복지기관 운영을 담당하는 지방공기업이다. 이와 같은 '온기박스'는 이 기관의 본업과는 동떨어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역 기반 공공기관이 생활복지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임직원 참여 기반의 '걷기 챌린지'와 연계된 기부금 조성 방식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는 최근 공공·기업 문화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이 일회성 후원이나 외주 이니셔티브에 그치기 쉽다는 점에서, 임직원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지역사회 대상과 실질적으로 연결되는 모델은 공공 부문에도 확산될 필요가 있다.

정책보완과 제도화를 고려하는 시선

이번 '온기박스'는 자치구 내 공공기관이 자율적 책임 의식에 기반해 벌인 활동이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하다. 수혜 대상을 발굴하고, 계절에 따라 맞춤형 수요를 파악하며, 재원 확보를 이어가기 위한 체계화는 아직 미진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민간·공공이 공동 운영하는 로컬 복지 플랫폼, 지역 소셜맵 데이터의 보편화, 협력 행정 체계 구축이다.

예컨대 일본이나 독일에서는 고령층 복지 사각을 줄이기 위해 '지역포괄지원센터'나 '지방자치단체–NPO–기업 간 복합연계 모델'을 통해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도모하고 있다. 한국 또한 초고령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정책 실험이 지방공기업을 기반으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번 사례로 모색해볼 수 있다.

나눔과 연결, 개인과 구조 사이에서

‘온기박스’는 개인의 정성, 기관의 책임, 지역사회의 필요가 맞물린 결과이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이런 자발적 시도들이 ‘복지의 마지막 울타리’ 역할만 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복지 체계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결국 시혜적 복지에서 권리 기반 복지로 전환하는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작은 기부가 지역의 계절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반복적이고 구조화된 실천은 지역 사회의 온도를 분명히 올릴 수 있다. '온기박스'가 단순한 방한키트를 넘어서 사람과 제도, 지역과 국가를 연결하는 상징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고민할 시점이다.

함께 생각해볼 거리

  •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은 복지 사각에서 어떤 역할까지 시도할 수 있을까?
  • 시민들이 복지의 수혜자뿐 아니라 생산자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는 어떻게 가능할까?
  • 복지의 일상화를 위한 소소한 실천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한겨울, 낯선 이름의 복지 공단이 준비한 작은 상자가 자칫 잊히기 쉬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기억하게 한다. 이 자체가 이미 가치 있는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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