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불안 시대, 우리 농정은 준비됐는가? – 농업 공공성 후퇴가 초래한 식량주권 위기와 지속 가능한 대안
지난 몇 년간 가속화된 기후위기, 국제 공급망 불안, 곡물가 상승은 우리 식량 시스템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문제는 곡물가격이 오르면 밥상 물가 역시 요동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2022년과 2023년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기상이변 영향으로 국제 곡물가가 급등했고, 이는 국내 배추·감자·당근 등의 채소류 가격 상승에 직결됐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 농정이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과 순환’이라는 대원칙 대신, ‘시장 중심의 효율 강화’만을 좇아왔다는 데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정말 안전할까?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에게 건강한 농업 생태계를 물려줄 수 있을까?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현행 농정은 ‘수급조절’보다는 ‘시장경쟁 강화’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 농식품부가 개입하기보다는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경우가 많고, 농가에 대한 소득 안정 장치나 기후위기 대응 프로그램도 충분하지 않다. 그 결과, 소규모 농가는 생존 위기에 몰리고, 대기업 위주의 유통 구조는 소농의 자립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농업의 공공성이 후퇴하면서 식량주권 또한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 대외 의존 높은 곡물 자급률, 20% 미만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2022년 기준 19.3%로 OECD 평균(63%)에 비해 턱없이 낮다. 쌀을 제외하면 밀·옥수수·콩 등 주요 곡물의 자급률은 10%에도 못 미친다. 이로 인해 농산물 수입가격이 조금만 올라가도 국내 물가와 식생활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농정당국은 ‘자급 목표 설정이 비효율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이는 세계 공급망 붕괴 상황에서 매우 위험한 판단이다. FAO는 기후위기 시대에 각국의 식량 자급률을 ‘국가 안보의 핵심’이라 강조한다.
- 농민 수 감소 + 고령화 심화
2010년 312만 명이었던 농업 인구는 2022년 기준 223만 명으로 90만 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 중 65세 이상 고령 농민 비율은 50%를 넘는다. 영세 농가의 수익성 악화, 농촌 의존 기반의 축소, 농산물 가격 불안정이 이 흐름의 핵심 원인이다. 농업을 ‘생산’이 아닌 ‘소비자 가격 조절 수단’으로 취급한 결과, 농촌은 점점 텅 비어가고 있다.
- 마을에서 해체되는 농업 생태계
대형 유통업체 중심의 공급 구조는 지역 농산물 순환 구조를 해치고, 관행농 중심의 대량생산은 토양 황폐와 수질오염을 초래한다. 실제로 국립환경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하천의 농업오염 기여율은 전체 수질오염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유기농·친환경 농법은 화학 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이며 토양 비옥도를 회복시키고 지역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독일·덴마크·프랑스 등에서는 이미 전체 농지의 10~15% 이상이 생태 기반 농법으로 전환 중이다.
이제는 단순히 싸고 많이 생산하는 농업이 아니라, 환경적·사회적 가치까지 고려한 ‘지속 가능한 농업 전환’이 절실하다. 소비자 또한 농업 문제의 공범이 될 수 있다. 지역 농산물을 선택하고, 친환경 먹거리를 구매하는 작은 실천이 농촌의 붕괴를 막고 환경을 복원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또한 시민 단체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공공급식 확대, 먹거리 위원회 구성 등 지역 식량 시스템 강화 정책에 지지를 보내야 할 때다.
건강한 밥상은 건강한 토양에서 시작된다. 농정이 공공성에 기초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기술 투입이 아니라 더 깊은 생태적 책임이다. 오늘 먹는 음식이 내일의 환경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