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으로 본 복지의 거리 – 차량 지원이 전하는 사회적 연결의 의미
복지를 말할 때 많은 사람의 머릿속엔 건강보험, 연금, 돌봄서비스 같은 단어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 모든 서비스는 물리적 ‘도달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바로 이동권이다. 이번에 기아자동차와 사단법인 그린라이트가 협력해 진행하는 ‘MOVE & CONNECT’ 차량 기부 사업은 그러한 복지의 기반 중 하나로서 ‘이동수단의 공공성’을 다시 조명하고 있다. 복지관과 사회적경제 조직에 전기차량 PV5를 최대 17대 기부하는 이 사업은 단순한 CSR 활동을 넘어 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대체적 구조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복지 사각지대의 물리적 장벽 – 서비스가 닿지 않는 곳
한국 사회는 고령화와 함께 1인 가구·노인·장애인 등의 이동 취약 계층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복지제도는 점차 촘촘해지고 있지만, **'서비스가 닿지 않는 곳'**까지 이를 확장하는 데에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 존재한다. 예컨대 노인복지관에서 제공되는 방문 돌봄 서비스나 지역사회 아동 대상의 방과후 돌봄 활동은 차량이 없을 경우 사실상 실행이 어려운 사업들이다. 물적 기반인 차량이 부재하면, 복지 정책의 전달력은 결정적으로 약화된다.
이 사업은 바로 그 점을 정조준한다. ‘노인을 위한 방문 서비스’, ‘장애인의 의료·교육 이동 지원’, ‘지역 아동 돌봄 프로그램’ 등에 차량이 실질적으로 투입됨으로써, 행정적으로 '있다'는 복지정책이 실제로 '도달한다'는 개념으로 전환된다. 이는 정책이 ‘문서’에서 ‘현장’으로 옮겨졌다는 중요한 징표이기도 하다.
사회적경제 조직의 자립 – 복지와 고용의 이중 과제
또 하나 주목할 대상은 사회적경제 조직이다. 이들은 지역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지역 일자리 창출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직이 차량 구매나 유지비에서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고, 이는 서비스의 지속가능성에도 타격을 준다.
이번 지원은 그런 조직들에게 복지 서비스의 연속성과 고용 안정이라는 이중 효과를 기대하게 만든다. 돌봄·간병 서비스를 펼치는 기업에게 차량은 영업수단이자 서비스 도구이며, 동시에 ‘지역사회 신뢰의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PV5의 다양한 차종은 지역 농산물 유통, 장애인 통학 지원, 고령층 병원 이동 서비스 등 선택지의 확장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제도 밖의 공공성 – 민간협력이 제도 공백을 메우는 방식
이 사업에서 눈여겨볼 또 다른 차원은 민간기업과 시민단체가 제도의 빈틈을 어떻게 협력으로 보완하는지에 대한 사례이다. 시장 논리로만 보면 수익성이 떨어지는 복지 차량 지원 사업은 CSR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기아는 이번 사업에서 비용지원뿐 아니라 차량 유지와 운영까지 고려한 장기 계획형 지원을 구조화했다. 이는 그린라이트와 같은 모빌리티 NGO의 전문성과 현장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업-비영리-지역사회의 삼각 협업’은 현행 복지전달체계가 놓친 틈을 메우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복지가 행정만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대, 이동권 기반의 새로운 ‘생활 인프라 복지’가 제도화를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다.
복지가 닿는 거리 – 연결의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
이동할 수 없으면, 복지에 참여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사실이지만, 현장에서 간과되기 쉬운 현실이기도 하다. 특히 고령자, 저소득층, 장애인에게 이동수단은 공공병원, 복지관, 문화시설을 향한 ‘문턱’이자, 소외를 벗어날 수 있는 출구다. 따라서 ‘MOVE & CONNECT’는 단순 차량 지원이 아니라 복지 접촉면을 확장하는 시도다.
OECD가 강조하듯, 복지서비스 접근성은 단순 양적 확대보다도 생활 반경 내 서비스 도달 가능성이 중요하다. 그러기에 차량 지원사업은 시설 확충보다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실제 체감 효과는 훨씬 클 수 있다. 도시와 농촌, 동과 서, 중심과 외곽 간 복지의 공간 불균형을 줄이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기술 책임에서 공공 연대까지 – 우리가 묻고 나아가야 할 질문들
'디지털' '모빌리티' '탄소중립'이 미래 사회를 이끄는 키워드라면, ‘복지와 연결성’은 그 기술이 실현할 가치다. 기아의 이번 사업은 기술의 사회적 책임이 재정의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그린라이트가 말한 ‘아름다운 이동’이란 구호도, 물리적 연결이 사회적 연대를 잇는 교차점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우리는 이 사업을 계기로 묻게 된다. 우리의 공공성은 얼마나 유연하게 복지 사각에 접근하고 있는가? 복지는 제도이기 이전에 이웃 사이의 거리에서 출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기업과 시민, 지방정부는 그 거리를 잇는 연결자 역할을 할 준비가 되었는가?
이와 같은 실천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영감이 되어야 한다. 각 지역사회가 복지의 인프라를 ‘이동성’ 관점에서 다시 점검하고, 기업 CSR이 양뿐만 아니라 방향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평가되어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한 실천은 가장 기본적인,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복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