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예술의 경계 허물기 – 문화권으로 읽는 포용의 조건
장애인의 문화예술 참여가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사회 통합과 자아 실현의 경로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열린 ‘온(溫)묵담’ 장애인 서예·캘리그라피 공모전에서 호매실장애인종합복지관의 참여자들이 다수 수상한 사례는, 장애인의 예술 참여가 실제 삶의 성취와 자신감으로 이어지는 좋은 예임을 보여준다. 예술을 통한 자기표현이 장애인의 자립과 지역사회 연결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우리는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 참여의 제도적 지형
장애인 복지의 주요 축 중 하나로 여겨지는 문화예술 활동은 법적으로도 보장 대상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법」 제25조를 통해 문화·예술·체육 활동의 기회를 국가와 지자체가 제공할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접근성은 여전히 제약적이다.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 발표에 따르면 비장애인의 문화예술 관람률은 80%에 가까운 데 비해, 장애인은 40%가 채 안 된다. 접근 가능한 시설의 부족, 정보 격차, 이동의 어려움 등이 중복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복지관의 역할은 작지 않다. 호매실장애인종합복지관처럼 교육, 창작, 발표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형식적 참여가 아닌 지속 가능한 창조적 경험을 가능케 한다. 결과적으로 예술 활동이 삶의 일부가 되고, 지역사회로 연결되는 발판이 마련되는 것이다.
예술이 주는 자아 회복의 경험
이번 공모전에 첫 도전해 수상한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도전이 큰 기쁨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이는 단순한 공모전 수상의 감동만이 아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창작하고 공유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경험, 즉 ‘주체성의 회복’이야말로 문화참여의 가장 근본적인 의의다.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자기표현은 종종 가족이나 조직 안에서 제한되기 일쑤다. 표현의 자유는 자유로운 이동이나 발언권, 노동 참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권리이다. 따라서 복지관의 수업 참여 → 공모전 출품 → 상이라는 과정은 문화권의 실현이자, 사회적 배제를 극복한 상징적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일시적 지원을 넘어 구조적 접근으로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문화 다양성과 사회통합을 위한 예산 확보를 점차 늘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프로그램이 단발성에 머무르거나, 장애 유형별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기획되는 경우가 잦다. 예를 들어, 시각 장애인을 위한 예술 접근성은 감각 대체 자료가 요구되고, 지체 장애인의 경우 이동 인프라와 결합된 문화 공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공영역은 단지 ‘참여 기회 부여’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생애주기와 전문가 지원 네트워크를 고려한 지속가능한 문화 생태계 조성이 과제가 된다. 이는 예술 교육, 창작, 유통, 미디어 노출까지 정책 설계가 통합되어야 가능하다.
생활 속 공감에서 시스템 변화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간극은 물리적 거리보다 경험의 단절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다. 예술은 상대의 삶을 상상하게 만든다. 수묵 작업 한 줄, 글씨 한 획 속에 담긴 시간의 깊이를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세계를 존중하게 된다. 따라서 예술은 포용의 기술이자 ‘사회적 감수성’을 키우는 도구로, 교육 현장부터 커뮤니티 현장까지 새롭게 자리 잡아야 한다.
이번 호매실장애인복지관의 수상 사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누구나 예술을 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며, 우리는 과연 그에 필요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가?" 정책 입안자는 한발 더 나아가 예산 확장의 논리보다 문화권의 관점에서 장애인 예술 정책을 설계해야 하고, 시민들은 생활 주변의 예술 활동에 관심을 갖는 것부터 공공가치 실현이 시작된다.
결국 포용사회란 전문가의 손에서 설계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감수성과 실천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테다.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이 ‘치료’나 ‘측은지심’의 영역을 넘어서서, 일상과 사회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었을 때 진정한 문화 도시, 포용 국가로의 전환이 구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