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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모스, 사진 속 침묵의 시학

갤러리 모스, 사진 속 침묵의 시학

겹쳐진 시간의 침묵 – 구본철 사진전이 전하는 물성의 시학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조용한 모퉁이, 갤러리 모스의 벽 위에 펼쳐진 풍경은 더 이상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시공간의 축적이며, 감정의 결이다. 구본철 작가의 사진전 ‘Silence of Layer: 겹의 무게’는 인화지 위에 쌓인 수많은 ‘겹’들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사는 차분한 감각을 다시 불러온다. 손으로 발라올린 플래티넘 팔라듐의 은은한 금속 광택은 과거의 사진 언어를 빌려, 오늘날 우리의 내면을 조명한다.

삶의 층위를 닮은 감광의 기술

구본철은 마치 수도승처럼 반복적이고 분주하지 않은 인화 과정을 거쳐, 서두르지 않는 시각의 시간을 만들었다. 플래티넘 팔라듐 프린트는 종이 위에 감광액을 여러 층 도포하고, 자외선에 노출시켜 이미지를 현상하는 아주 고전적인 방식이다. 이 고요한 공정을 통해 완성된 사진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 ‘느끼는 것’으로 확장된다.

작가가 포착한 장면은 대부분 일상 가까이에서 바라본 것들이다. 그러나 그 일상의 풍경은 낯설고도 신성하게 재구성된다. 바로 그 간극에서 관객은 자신의 감각과 기억을 작품 위에 덧칠할 수 있게 된다.

고요는 어떻게 무게를 갖는가

전시는 반복, 축적, 침묵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디지털 이미지의 빠름과 가벼움이 지배하는 시대에, 의도적으로 선택된 느림의 윤리이다. 우리가 물리적 '무게' 앞에서 느끼는 존재론적인 감각처럼, 작품은 시각이 아닌 촉각에 가까운 감동을 남긴다. 말 없이도 침묵의 음파로 흘러드는 사진들은 사라진 것을 기억하고, 지나간 것을 되새기는 감각의 매개로 작동한다.

한 장의 사진이 가지는 두께

이 전시는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이 아닌, 층위(layer) 그 자체의 시학이다. 플래티넘 팔라듐이 갖는 중후한 색감이나 세세한 디테일은 보이는 것을 넘어 ‘잠재된 것의 숨결’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풀잎을 간직한 채 녹슨 담장의 디테일이나, 강물 위에 잠긴 겨울 하늘 한 귀퉁이는 현실보다 더 실감 나는 내면 위의 풍경으로 치환된다.

이런 표현은 일본의 와비사비(Wabi-Sabi) 미학, 혹은 독일 베허파의 사진철학과도 통한다. 오래된 물질과 시간의 손길을 머금은 피사체들이 새로운 맥락을 얻어, 인간 존재의 약하고 사라질 운명을 조용히 마주하도록 이끈다.

예술의 속도가 삶의 속도가 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고 ‘스크롤’하지만, 이 전시는 속도가 아닌 깊이를 감각하는 삶의 태도를 제안한다. 구본철 작가의 사진은 ‘보다’라는 동사를 ‘머문다’로 바꾸어 놓으며, 우리가 얼마나 시선을 급하게 던지고 또 돌리고 있었는지를 일깨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감각해야 할 문화란 무엇일까? 이 전시는 고요하게 묻고 있다. ‘당신의 삶에도 이러한 층층의 시간이 남아 있는가?’라고.

마무리하며

‘겹의 무게’는 오히려 그 무거움 속에서 삶을 가볍게 성찰하게 만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도 하나의 인화지라고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어떤 순간은 더 진하고, 어떤 날은 덧없이 투명하게 지나간다. 그렇지만 시간이 쌓이고, 마음의 감광이 반복되면,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 믿음.

이번 주말, 카메라보다 천천히 걷는 발걸음 하나만 준비해보자. 혹은, 낡은 벽 하나에 고요히 시선을 머무는 연습도 좋다. 우리의 일상 역시 침묵의 예술로 확장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문화가 삶에 스며드는 방식일 것이다.지금, 당신의 ‘겹’은 어디에서 빛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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