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와 디지털 돌봄의 접속점 – AI 노인케어는 인간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돌봄이 가장 절실한 순간, 사람은 언제나 곁에 머물 순 없다.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에서 ‘독거노인’의 삶은 이 물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20%가량이 혼자 살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만성질환과 외로움을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 독거노인을 위한 국가 정책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지만, 여러 제도는 여전히 돌봄 공백과 현장 인력 부족이라는 실질적 한계를 맞닥뜨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와 NHN의 자회사 ‘와플랫’이 체결한 디지털 기반 노인돌봄 협약은 중요한 변화를 시사한다. AI를 활용한 ‘디지털 돌봄’ 플랫폼이 이제 실증 단계에 접어들면서, 노년층 돌봄의 방식 자체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AI가 채우는 돌봄의 틈 – 기술은 감정을 대체할 수 있을까?
‘와플랫 AI생활지원사’는 어르신의 음성 대화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강상태, 감정, 수면, 영양 등의 정보를 취합하고, 이를 실시간 전송해 맞춤형 돌봄에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기존의 전화·방문 중심 돌봄 체계에 비해 위기 감지의 즉시성과 인력 자원의 효율성에서 의미 있는 보완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설계다.
하지만 기술이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 돌봄의 본질은 정보 전달만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 AI가 안전과 편의에 기여할 수는 있어도,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 기계와의 상호작용 자체에 거부감이나 익숙하지 않음이 존재한다. 실제로 AI 스피커 보급 사업의 일부 지역에서는 노인들이 사용법에 낯설어하거나, 기계와의 대화에 불편함을 느낀 사례들이 보고된 바 있다.
제도의 간극과 체감 격차 – 기술이 앞서고, 정책은 뒤쫓는 현실
복지 현장에서 디지털 전환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책 설계와 인프라 보급은 분절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는 장기요양등급 외 취약 노인을 주요 대상으로 하지만, 서비스 기준이나 접근성 면에서는 여전히 지역 간 불균형이 크다. 일부 지역은 생활지원사의 수 자체가 부족하고, 디지털 기기에 대한 교육 또는 유지관리 예산도 미비하다.
여기에 돌봄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문제, 고용 안정성 부족, 번아웃 등도 디지털 전환의 속도에 긴밀하게 연결된다. 시스템이 고도화된다고 해도, 그것을 현장에서 끌고 가는 건 결국 사람이다. 기술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복합적 모델이 필요하지만, 현재 정책은 여전히 ‘추가 장비 도입’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디지털 복지의 윤리적 질문 – 데이터는 안전한가, 돌봄은 공정한가?
모든 디지털 복지 시스템이 꼭 짚어야 할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 “데이터는 안전하게 보호되는가?”, “접근이 어려운 이들은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AI생활지원사가 수집하는 데이터는 사적인 영역의 깊은 정보들이다. 하지만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투명한 검증 시스템은 아직 미비하다. 기술이 취약자를 감시하거나 통제하는 장치가 되어선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령자들 사이에서도 정보 격차에 따른 ‘복지 불평등’이 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단지 도입 여부가 아니라, 사용 능력, 기기 소유 여부, 헬프데스크의 유무 등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구조적 접근이 요구된다.
생활 속 변화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AI 돌봄 시스템이 시험적으로나마 독거노인의 실생활에 적용된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한 변화다. 그러나 이는 기술 도입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가치 전환과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다. 단순히 “효율적인 복지”로 귀결될 사안이 아니다.
무엇보다, “돌봄을 기술에만 맡겨도 되는가?”, “지속 가능한 공동체 기반 돌봄 모델은 가능한가?”, 그리고 “디지털 윤리와 노인 인권은 적절히 균형 잡혀 있는가?” 같은 질문이 함께 따라붙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복지의 손을 뻗는 범위를 넓혀줄 수 있다. 하지만 공공 가치가 담보되지 않는 혁신은 쉽게 ‘편리한 방치’가 된다. 시민은 이 변화를 어떻게 지지할 것인가, 제도는 이 실험을 어떻게 품을 것인가, 사회는 어떤 돌봄을 ‘좋은 돌봄’으로 인정할 것인가 – 이 진화하는 현장은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답해야 할 과제를 던지고 있다.
디지털은 방법일 뿐이다. 돌봄의 목적은 여전히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