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매실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인 문화예술 권리의 확장

장애인의 문화예술 접근권, 제도와 인식의 언어를 다시 쓰는 시간

문화예술은 인간 삶의 내면을 표현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중요한 매개이지만, 여전히 장애인에게는 '접근 가능한 여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 호매실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된 ‘온(溫)묵담’ 서예·캘리그라피 공모전에서 5명의 장애인이 수상한 사례는 이 지점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한다. 장애인이 ‘문화의 주변인’이 아닌,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주체로 인정받기까지, 우리 사회가 넘어서야 할 제도적·인식적 장벽은 무엇일까?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 왜 필요하며 무엇이 부족한가

장애인의 문화예술 참여는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자기 표현의 권리이자 사회 통합의 척도다. 그러나 실제로는 접근 가능한 공간, 프로그램, 인력 부족 등 만성적인 제약이 지속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2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의 63.4%가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경험이 있으며, 가장 큰 이유로 ‘정보 부족’과 ‘장소 접근성 부족’을 들었다.

법적으로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 ‘문화예술진흥법’에서 문화 접근권을 보장하고 있으나, 여전히 ‘장애인 당사자의 경험’이 반영된 제도 설계는 미흡하다. 프로그램이 있어도 이동권, 비용, 정보 전달 방식에서 소외를 겪는 경우가 많다.

문화예술 속 ‘참여권’과 ‘표현권’의 재구성

이번 공모전은 장애인 참여자들에게 첫 도전이자 자존감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었다. “처음이라 두려웠지만, 용기를 낸 도전이 큰 기쁨으로 돌아왔다”는 수상자의 말은, 예술이 단순 창작을 넘어 존재 그 자체를 긍정하는 사회적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성취는 장애인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운 전문 기관의 지속적 프로그램 운영과 가족·지역사회의 지지가 만들어낸 복합적 결과다. 예술 프로그램이 단기 전시나 일회성 교육이 아니라, 꾸준한 관계 형성과 전문 지도 속에 지속될 때에야 비로소 ‘장애인의 표현권’이 삶의 언어로 확장된다.

복지현장의 경험, 제도적 관행에 말을 걸다

장애인 복지기관이 주체적으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성과를 내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지방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일회적 사업 성격이 강하다. 문화정책과 복지정책의 분리 속에서,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은 부처 간 책임 공백에 놓이기도 한다. 또한 예산 편성과 성과 평가 기준이 ‘정량적 참여 인원’이나 ‘행사 횟수’에 머무르면, 정작 개인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가려지기 쉽다.

해외에서는 이런 흐름을 ‘문화적 권리(right to culture)’ 차원에서 제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예술과 건강(Arts & Health)’ 정책은 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단순 치료 목적이 아닌, 삶의 질 향상과 자율적 시민성의 일환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을 참고해, 우리 역시 예술이 단순 '치료 수단'이 아닌 ‘자기 실현의 도구’로 인식되려면, 평가와 회계 중심 행정을 넘어서는 접근이 필요하다.

지방 복지기관의 역할과 문화 불균형 해소의 실마리

호매실장애인종합복지관이 보여준 사례는 수도권 외곽 지역 내 복지 인프라의 가능성을 말해준다. 지역 기반 기관의 기획력과 실행력은 ‘장애 당사자 중심 문화정책’이 중앙에서만 가능하다는 오해를 깨뜨리며, 문화 불균형 해소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디딤스쿨’, 혹서기 지원 프로그램 등 복합 서비스를 연중 운영함으로써 예술 활동이 고립되지 않고 일상성과 연계되도록 돕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단순 수상 실적을 넘어, 장애인의 지속가능한 예술 활동을 시민 사회와 연결시키는 기능이 이런 지역 복지 기관의 강점이며, 향후 정책 발굴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문화적 권리로서의 예술 접근, 우리 사회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이번 공모전의 장면은 결국 우리 사회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장애인이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성과’로 보도되어야 하는 현실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형식적 접근권 보장을 넘어, 실제 생활 속에서 장애인이 ‘예술을 자신의 언어’로 가질 수 있으려면, 정책 설계, 기관 운영, 시민 인식 모두 새로운 좌표를 요구받는다.

장애인의 문화예술 접근권 보장은 결과가 아닌 시작이어야 한다. 각 지역 복지기관, 교육기관, 예술단체, 시민단체는 ‘예술’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매개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지우는 일상의 공간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은 주변의 문화행사나 프로그램에서 '누가 제외되어 있는가?'를 눈여겨보는 작은 감각에서부터, 예술을 둘러싼 사회적 정의를 새로 써 내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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