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매실장애인복지관, 예술은 권리라는 질문

장애인의 문화예술 권리, 어디까지 왔는가 – ‘온묵담’ 공모전이 남긴 질문

예술은 표현의 수단이자 자아를 확인하는 통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이 통로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은 그리 당연한 일이 아니다. 최근 호매실장애인종합복지관이 주관한 제1회 ‘온(溫)묵담’ 장애인 서예·캘리그라피 공모전이 주목을 끄는 것은, 단순한 수상 소식 때문이 아니라 장애인의 ‘문화권’에 대한 제도적, 사회적 성찰을 촉발했다는 점에 있다.

문화예술 접근권의 정책 맥락

1990년대 이후 한국 장애인복지정책은 주거·이동·교육 중심에서 점차 문화예술로 확대되고 있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문화·예술·체육 활동에서의 접근권을 명시했고, 2017년엔 문화체육관광부가 ‘장애인 문화예술 진흥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법제도는 여전히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예술은 선택이 아니라 권리’라는 패러다임 전환은 지연되고 있으며, 실질적 참여 기회와 인프라는 도시에 편중되고 특정 예술 장르 중심으로 협소하게 구현되었다.

공모전 참여자의 생애 첫 도전이라는 점은 그 공백을 반증한다. ‘처음이라 두려웠지만 용기를 냈다’, ‘앞으로 계속 도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는 수상자들의 말은, 동등한 조건에서의 지속 가능한 참여 기회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준다.

‘예술소외’의 사회 구조와 당사자의 경험

많은 장애인은 복지관 프로그램 외에 스스로 예술 활동을 기획하거나 발표할 기회를 잡기 어렵다. 여전히 예술은 ‘재능을 가진 일부인’에게만 허용된 영역처럼 인식되며, 장애인은 수혜자나 ‘치유의 대상’으로만 소비된다. 이러한 시선은 자기표현의 주체로서 자리 잡으려는 장애인의 노력을 어렵게 만든다.

이번 공모전은 서예와 캘리그라피라는 전통예술에 장애인이 도전하고, ‘글씨로 말하고 삶을 그리는’ 가시적 결과물을 사회에 제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복지의 대상에서 창작의 주체로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프레임 전환을 요구한다.

지역사회 기반의 문화권 확대 실험

경기도 수원의 호매실장애인종합복지관은 지역 기반 ‘영역 간 통합’을 실험 중인 기관이다. 공모전을 포함해 디딤스쿨 돌봄 사업, 침구 나눔 프로그램 등은 단순한 복지서비스를 넘어 장애인 당사자의 관계망 회복과 지역사회 내 문화적 주체로 포섭되는 기반을 만드는 전략이다.

지방정부 및 복지관 중심의 문화예술 정책은 중앙정부의 선언적 계획을 실제적으로 변환하는 데 강점이 있다. 특히 서수원과 같은 복합지역에서는 복지와 문화가 분절되지 않은 형태로 작동될 때, 참여자의 자율성과 자존감을 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

시민사회와 제도는 어떤 돌봄을 완성해야 하는가

이번 공모전을 통해 드러난 또 다른 메시지는, 장애인이 예술로 삶을 펼치는 환경이 결국 사회 전체의 문화적 성숙과 관계된다는 점이다. ‘온묵담’이라는 이름처럼 예술은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하되, 결국은 따뜻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게 한다.

문화예술의 복지영역화는 단순한 창작체험을 넘어서야 한다. 제도는 지역마다 반복적으로 실현 가능한 문화권 보장 모델을 설계해야 하며, 예산과 인력 배치 역시 장르 편중 없이 조직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선택지다. ‘누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귀 기울이며 맞춤형 기회를 설계해야 예산도 제자리에서 기능하게 된다.

장애인 문화정책은 따라서 예술적 기회의 균형문제이자, 민주주의의 완성도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예술이 권리가 되는 길

‘온묵담’ 공모전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복지관 한 곳의 노력에만 기대어야 하는 현실을 제도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장애 예술인이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일상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실현 가능한가?

정책 입안자는 생활권 중심의 문화 인프라 구축을 고민할 때이며, 시민사회는 창작물을 감상하고 공유하는 일상의 문화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장애인의 표현이 사회의 언어가 되려면, 예술이 ‘차별 없는 참여의 장’이라는 신념을 공유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는, 단 한 번의 도전에서 시작된 기쁨을 지속 가능한 여정으로 전환하는 길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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