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지 않은 이들의 이름으로 – ‘타바레스 스트란’ 전시가 남긴 역사와 감각의 흔적
우리를 매혹시키는 예술은 언제나 어떤 ‘부재’를 말합니다. 본다는 것은 눈앞에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지만, 그 상징 너머에서 사라졌던 무언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진정한 감각의 전율을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현대자동차와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협업으로 열린 ‘타바레스 스트란: The Day Tomorrow Began’ 전은 기억되지 않은 이들에 대한 감각적 추도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공간의 경계에서, 사라진 목소리를 되살리는 기술
이번 전시는 단순한 미술 전시를 넘어, 과학과 정치, 역사와 신체가 맞물리는 접점에서 벌어지는 복합적 언어의 실험입니다. 바하마 출신의 작가 타바레스 스트란은 미국과 나소에서 활동하며,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에 대한 서사를 독창적 방식으로 탐색합니다. 특히 그가 재창조한 <보이지 않는 백과사전Encyclopedia of Invisibility>
은 1만7000개 이상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기존 서구 중심 백과사전에서 지워진 존재들을 다시 불러냅니다. 이는 단지 과거에 대한 고발이 아닌, 앞으로의 ‘기억 방식’이란 무엇인지 되묻는 시도입니다.
누락된 인물과 장면, 기록되지 않은 목소리를 현재로 호출하는 이 작업은 단순한 복원이 아닌 새로운 역사 쓰기입니다. 순간의 미적 감동을 넘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어떤 윤리적 태도와 감성의 전환이 필요한지를 촉구하는 작품이기도 하죠.
네온 빛으로 재정의되는 기념비의 의미
혹자는 묻습니다. 기념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면, 왜 언제나 권력이 이를 재단하고 승인하는 걸까요? 타바레스 스트란은 5m 높이의 조각 <Flip Monument(Christophe x Napoleon)>를 통해 기념비가 가진 물리적 위엄을 전복하고, 그것이 상징하던 위계에 질문을 던집니다. 이 ‘전복된 기념비’는 아프리카 독립 영웅 크리스토프와 프랑스의 식민 권력자 나폴레옹을 병치함으로써 이중의 시선을 유도합니다. 비물리적인 존재들을 기념할 수 있는 가능성, 역사는 기록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궤적을 남긴다는 진실을 재확인하게 하죠.
기술과 예술은 어떻게 기억을 우주로 쏘아올릴까
이번 전시는 단지 지상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난 2018년, 스트란은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계 우주비행사 로버트 헨리 로렌스 주니어를 기리는 조각
그리고 그러한 기술적 구현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예술이 다시 사회와 과학, 물리학과 정치철학에 질적으로 접속하는 방식임을 보여줍니다. 예술의 한계가 기술을 통해 확장될 수 있다는 이 선언은, 현대자동차가 LACMA, 테이트, 휘트니 등 세계적 기관들과 함께 예술의 통합적 지평을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우리가 어떤 이름을 부르며 내일을 시작할 것인가
‘The Day Tomorrow Began’, 즉 내일이 시작된 날. 이 모호하고 슬픈 문장은, 역사가 오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를 인정할지 선택하는 ‘기억’에서 비롯된다는 메타포입니다. 이 전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이야기를 잊고 있나요? 당신의 기억은 누구의 침묵을 허락하고 있나요?"
낯선 세라믹 조각과 대형 네온 텍스트, 그리고 백과사전을 뒤엎는 설치 작업들은 모두 그 하나의 질문을 향해 나아갑니다. 시대는 과거에 대한 개입 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모든 감각적 경험은 결국 현재를 사는 나의 사유를 요구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감각해야 할 문화는 ‘부재의 이름’을 자각하는 기억의 정치입니다. 타바레스 스트란의 전시는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서사를 예술로 재구성함으로써 관객에게 하나의 운율처럼 반복되는 질문을 남깁니다.
내일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묻히고 지워진 이름을 되새기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 오늘 당신의 삶에 스며들 수 있는 질문:
- ‘기억되지 않은 이름’ 중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이는 누구인가요?
- 나의 일상은 어떤 방식으로 차별받는 이야기들을 ‘일상화’하고 있지는 않나요?
- 도시의 기념비 중, 나는 어떤 기억을 새기고 싶은가요?
이 전시는 미국에서 열리지만, 우리의 시선과 감각 역시 이 전시처럼, 지금 '기억의 정의'를 바꾸는 여행을 떠나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