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때 – 포용의 문화정책과 우리 모두의 역할
장애예술은 단순한 복지의 영역이 아닌, 사회적 상상력을 넓히는 문화적 자산이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의 창립 10주년을 기념한 이번 문화행사는, 지난 10년간 세워온 토대를 넘어 장애예술의 일상화와 제도적 보장, 그리고 국제 교류의 필요를 짚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이번 3일간의 행사를 통해 우리는 장애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돌아보고, 그 가치를 어떻게 제도화하고 사회문화 속에 녹여낼지를 다시 성찰하게 된다.
제도적 지원에서 문화 참여로: 장애예술정책의 확장
우리나라에서 장애예술은 2015년 장문원 설립과 함께 공적 정책의 틀 안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2017년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 예산이 별도로 교부되며 ‘권리로서의 예술 참여’ 개념이 제도화되기 시작했고, 2021년에는 장애인 예술 활동 전담기관으로 지정되어 체계적 지원이 가능해졌다. 이는 ‘장애예술인지원법’으로 이어져, 이제 예술을 수동적 복지 혜택이 아닌 능동적 문화기여의 영역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제도와 현장의 간극, 그리고 접근성에 대한 지역 간 불균형, 예술의 질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구조적 문제는 과제로 남아 있다. 예술지원 예산은 서울 및 수도권에 집중되어 실행력이 떨어지며, 장애유형에 따른 차별과 장르적 다양성 부족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의사소통과 협업 문제가 제도 안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못해, 많은 이들이 예술계로 진입하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 속 협력의 가능성
이번 행사에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이 참가하는 동아시아 포럼이 함께 열렸다. 각국이 자국의 정책과 예술현장을 발표하며 포용적 문화정책의 흐름을 공유하는 장면은, 장애예술을 거대한 아시아 문화생태계 속에서 보편적 가치로 확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열린 균열, 가능성의 틈’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한-캐나다 장애예술 교류전은, 장애를 고정된 정체성이 아닌 다층적 문화 경험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예술의 경계선, 즉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인식 자체를 해체하려는 글로벌 담론과도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국제적 교류는 단순한 전시 이상으로, 각국의 제도적 조건, 사회적 수용성, 작가들의 창작 환경에 대한 질적 비교를 가능하게 하며 정책 설계에도 반영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정된 예산을 나누는 경쟁이 아닌, 공적 예술자산으로서의 공동 생산 모델을 고민하는 접근이다.
사회적 인식과 문화 향유의 간극
장문원의 캐릭터 ‘솔라도레’와 슬로건 공모, 수어 아이돌팀 ‘빅오션’의 참여 등은 대중의 인식을 넓히려는 흥미로운 시도이다. 이는 장애예술을 ‘보여주기식 행사’에서 벗어나, 비장애 대중과 장애예술인의 교차 지점을 찾으려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관객의 자발적 참여 유도, 지역사회 기반 협력, 공연장 접근성 등 구체적인 ‘경험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2 국민 문화향유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연간 문화예술 행사 참여율은 7.8%로 일반인(38.6%)과 큰 격차가 있다. 이는 장애인의 물리적, 심리적 접근성이 제도화된 만큼 실제 생활 속으로 침투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예술교육, 관객 리터러시 함양, 미디어의 장애예술 홍보 역할 등이 함께 구축돼야만, 진정한 의미의 ‘모두를 위한 문화’가 실현 가능하다.
모두의 예술, 우리 모두의 과제
장애예술은 단지 ‘장애인을 위한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창작 욕구와 표현 욕망, 존재 방식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선언이자 실천이다. 장문원 10주년의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제도와 사회가 만들어온 물리적 벽을 허물고, 감각과 표현, 존재성이라는 예술의 본래 문법으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 말이다.
그렇기에 장애예술을 경험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단순한 연대의 표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화 다양성 역량을 시험하는 일종의 ‘사회적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 시민의 시선, 언론의 언어, 기업의 스폰서십, 교육자의 가르침 모두가 서로 연결돼야 이 ‘모두의 문화’는 비로소 일상이 된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독자에게 간단한 물음을 남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누군가의 표현권이 막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예술을 관객으로서 단지 ‘관람’하고 마는가, 혹은 함께 ‘해석’하고 ‘확장’하려는가?
장애예술은 우리가 그간 놓쳐온 감각에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답하는 태도의 변화가, 제도 그 이상의 예술적 전환을 가능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