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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엔비, 감정노동 회복의 민간 해법

피엔비, 감정노동 회복의 민간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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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자의 심리 회복, 제도 밖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 – 정책의 외곽에서 기능하는 정서 지원 프로그램의 가능성

고객 앞에 선 많은 직장인들이 매일 감정을 조절하며 일한다. 이들을 '감정노동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친절과 미소를 요구받지만, 종종 모욕과 무례도 감내해야 한다. 특히 공공기관의 고객응대직원은 공익성과 서비스라는 이중의 책무 속에서 심리적 소진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피엔비가 진행한 ‘맞춤형 정서 회복 프로그램’은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민간의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감정노동과 제도적 대응의 한계

2018년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보호 효과에 의문이 제기된다. 제도는 초기 안전교육과 상담실 운영을 권장하지만, 공공기관 내 예산·인력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감정노동 보호지침을 도입한 사업장은 전체의 절반에 불과했고, 직원들은 여전히 "심리적 방패막이 없다"고 체감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빈틈을 파고든 것이 바로 피엔비의 실제적 심리 회복 모델이다. 2025년 한 해 동안 부산 지역 공공기관에서 운영된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정서적 회복 능력을 함양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기존과 차별된다. 강연, 미식, 웃음 레크리에이션이라는 이질적 요소의 결합은 '회복탄력성'이라는 정서적 개념을 조직 내 일상으로 들여오는 시도였다.

현장의 반응이 말하는 것들

해당 프로그램에 참가한 직원들은 "실제 업무에서 필요한 감정 방어 기술을 배웠다"며 기존 연수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몰입감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는 정서 케어가 단순한 '치유'를 넘어, 일의 지속 가능성과 직무 만족도를 높이는 조직 자산으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콘텐츠는 강의가 단순한 동기 부여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정서 역량 교육으로 이어지도록 돕는다.

감정노동은 특정 직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택배기사, 콜센터 상담사, 간호사, 교사 등 사실상 오늘날 대부분의 직무가 '정서 관리' 능력을 품고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능력을 키울 기회는 개인의 시간과 비용에 전가되어 왔다는 불균형은 여전히 이슈다.

계층별·세대별 감정노동 인식 차이

정서 회복의 사회적 필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세대 간 인식의 간극은 정책 수용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40~50대 관리자층은 "스트레스는 당연한 것"이라거나 "정신적 문제는 개인의 강인함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문화를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 반면, MZ세대는 감정노동을 극복이 아닌 개선해야 할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본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정서 지원에 대한 정책 투자와 사내 프로그램의 설계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과연 정서적 건강을 조직이 보장해야 할 복지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은 어디쯤 와 있는가?

공공의 문제, 민간의 해결 시도

정서 회복 프로그램이 공공기관의 고객응대직원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제도가 담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 민간이 기능적 해법을 모색하고 유연하게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례이기도 하다. 실제로 OECD는 ‘감정노동자의 정신건강 증진’을 2030 지속가능 개발 목표(SDGs)와 연동하여 강조하고 있으며, 일부 북유럽 국가는 휴먼서비스 직군에 별도의 ‘감정 대응 휴가제’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방정부 또는 기초 지자체에서 이런 외부기관 연계 프로그램을 제도화하려거나, 복지점수를 배정해 예산 편성으로 연결하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할 시점이다.

정책 너머의 지속가능한 일의 조건

감정노동은 단순히 일이 힘들다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떤 유형의 노동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피엔비의 사례는 프로그램 그 자체만큼이나, 제도 밖에서도 가능한 정서 회복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 기획의 사회적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과제는 프로그램의 일회성 효과에서 벗어나, 어떻게 조직 내 문화로 정착시키느냐에 있다. 지역사회는 이러한 민간의 실험을 제도와 연결 짓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공공기관은 제도만이 아닌 경험의 연결고리를 확장해 나가는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프로그램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명확하다. "효율성과 성과의 구조 속에서 인간다운 노동 경험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이는 일상 속 정서적 권리를 조직 단위, 지역 단위, 정책 단위에서 함께 고민하는 사회적 응답을 요구한다.

정서적 회복도 공적 자원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우리 각자는 일하는 동료에게, 지역사회 구성원에게 혹은 제도 설계자에게 그 물음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복지법안이 아니라, 일의 삶에 감정을 되돌려주는 작고 실질적인 개입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