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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슬립, 꿈의 소리를 걷는 전시

콜드슬립, 꿈의 소리를 걷는 전시

유령의 좌표를 따라 걷다 – 꿈과 장소 사이를 잇는 청각적 서사의 실험

우리는 꿈속에서 간혹 낯익은 장소에 다시 들어선다. 시간을 벗어난 공간, 현실과 상상 사이의 틈에 새겨진 풍경. 이때 장소는 기억이자 감정의 표상이 되고, 그것은 하나의 ‘청각적 지도’가 된다. 서울 강북구의 독립예술공간 콜드슬립(koldsleep)은 이러한 꿈과 장소의 미묘한 충돌에 주목한 전시, 김미현의 《유령 좌표(Phantom Coordinates)》를 통해 우리의 무의식을 사운드 지형으로 펼쳐 보인다.

잠든 도시 위를 잇는 소리의 지형

이번 전시는 한 사람만 입장 가능한 ‘1인 관람’ 형식을 채택했다. 관객은 자신만의 꿈 경험을 따라, 장소와 목소리, 기억으로 이루어진 고요한 전시장 안을 걷는다. 이 전시는 단순히 시각적인 감상을 넘어, 관객의 청각과 감정을 매개로 ‘기억의 지형학’을 구축해낸다. 작가는 관람자를 ‘포노그래프의 바늘’로 설정해, 관객이 장소와 꿈을 ‘재생’하는 하나의 매질이 되도록 만든다. 이는 단순한 몰입형 전시를 넘어, 우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기억을 감각하며 삶을 재해석할 수 있는지 묻는 실험이다.

‘유령 좌표’의 핵심은 작가 김미현이 고안한 개념인 ‘포노스코어(Phonoscore)’다. 꿈속에서 맴돌던 장소의 소리들, 그 미세한 진동을 수면 위로 떠올려 재구성한 이 스코어는, 고전을 넘어선 현대의 악보이자 개인적인 수행 장치다. 이곳에서 우리는 관람자가 아닌 ‘기록자’가 되고, 목소리로써 시간을 채집하고 공간을 채색한다.

도심의 꿈, 소리를 통해 다시 듣기

이 전시는 강북구 거주자들의 ‘꿈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꿈속에서 이들이 마주했던 장소들은 서울의 실재하는 공간과 겹치며 현실을 잠시 흔든다. 꿈은 어떤 방식으로 도시를 기억하는가? 반대로 도시는 어떤 층위로 우리의 의식을 저장하는가? 꿈과 장소의 중첩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한 도시의 무의식적 서사를 엿볼 기회다. 누구의 꿈이든, 누구의 기억이든, 도시 곳곳에 그 흔적은 남아있고 소리는 그 좌표를 따라 걸을 수 있게 한다.

콜드슬립은 이전에도 ‘이인환각연쇄고리’와 ‘Night Score’ 같은 실험적 경험을 통해 관객의 감각과 신체를 적극적으로 호출해 왔다. 이들은 도시를 숨은 무대 삼아, 밤이라는 시간에 접속해 관객을 ‘환대의 존재’로 맞이한다. 그런 점에서 ‘유령 좌표’는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이자, 더욱 섬세하고 감각적인 꿈 탐사의 종착지처럼 보인다.

모든 전시는 1인 사전 예약제로 진행된다. 우연을 허락하지 않는 이 구조는 오히려 각자의 꿈을 정제하고,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자신의 청각을 낯설게 만들어준다. 사적 경험은, 이처럼 정제될 때 더욱 보편적인 울림을 갖는다.

지금, 꿈을 향한 내면의 여행을 시작할 때

《유령 좌표》는 감상 이전에 질문이다. “당신은 최근 어떤 장소에서 꿈을 꾸었는가?”, “그 꿈 속에서의 소리는 무엇이었는가?” 꿈은 사라지고 남지 않지만, 그것이 향했던 좌표를 복기하는 일은 가능하다. 이는 기억을 음악처럼 '재생'하는 과정이자, 내면의 풍경을 타인과 공유하는 은밀한 통로다.

도시를 걷는 우리의 발걸음도 소리며, 꿈은 결코 유령이 아니라 내적 진실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전시는 끝나지만, 우리의 사유는 시작된다.

당신도 오늘 밤, 잠들기 전 머릿속을 스쳐가는 장소와 소리에 집중해 보라. 그 흔적을 내일 아침 어딘가에 기록해두는 것에서부터, 나만의 ‘포노스코어’를 그려보는 건 어떨까? 도시는 기억을 듣는 당신의 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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