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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격차로 본 여성 건강권

의료 격차로 본 여성 건강권

여성 건강권의 미래, 멀리 있는 권리인가? – '의료 접근 격차'로 본 웨일즈 낙태 서비스 문제의 구조적 시사점

21세기 복지국가라 불리는 영국, 그러나 여성 건강권은 지역에 따라 큰 격차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BBC 보도에 따르면, 웨일즈(Wales)는 영국 내에서 중기 외과적 낙태(14주~24주)를 가장 부실하게 제공하는 지역으로 지적되었다. 이는 단순한 의료 문제를 넘어, 성별, 지역, 계층 간 건강 불평등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회적 시그널이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변화의 흐름은 과연 어디에서 시작되고, 누구를 향해 가고 있을까?

격차가 만든 고통: 웨일즈의 구조적 진료 공백

웨일즈에서는 중기 낙태를 원하는 여성이 자국 내 병원이 아닌 런던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022년 기준 약 175명의 여성이 외과적 시술을 위해 잉글랜드로 이동했고, 여행과 숙박 제공이 있더라도 심리적 부담은 상당하다. 한 사례에서는 의료 조건상 일반적인 시술이 불가능했던 여성이 결국 원치 않는 임신을 지속해야 했으며, 이는 “인생 최악의 여름”이라는 기억으로 남았다.

이러한 문제는 의료 시설 부족, 시술 가능한 전문 인력의 부족, 숙련된 병상 공간의 부재라는 현실적인 제약에서 비롯된다. 이는 웨일즈 정부의 첫 여성 건강 계획에서도 중기 낙태를 “향후 6~10년 과제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시스템적으로도 개선의지가 즉각적이지 않음을 방증한다.

북아일랜드보다 뒤처진 웨일즈: 글로벌 리더십 위기에 대한 경고

아이러니하게도, 낙태가 2019년까지 범죄로 간주되었던 북아일랜드조차 현재는 20주 이후의 외과적 낙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 웨일즈는 14주 이후로는 사실상 진료 공백 상태다. 이는 낙태 제도가 '합법화'되었는가보다, '얼마나 실질적으로 보장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글로벌 여성 건강권을 연구하는 Guttmacher Institute는 “의료 서비스 접근은 법보다 의료 인프라와 지역 사회 인식이 좌우한다”고 지적한다. 웨일즈가 직면한 상황은, 법적 권리와 실제 권리 간의 불일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기술과 데이터는 존재하는데, 왜 서비스는 멀리 있는가?

현재 영국 전체에서 낙태 중 거의 **86%는 약물 기반의 '의료 낙태'**가 차지한다. 이는 과학기술 발전과 디지털 건강 시스템의 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료 낙태가 모든 여성에게 적합한 솔루션은 아니다. 신체적 조건, 정신 건강, 과거 경험 등에 따라 외과적 시술이 더 적합한 여성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일즈 내 시술 가능한 숙련 의료진의 부재, 전용 의료 공간의 부족 등은 디지털 시대의 ‘의료 평등’이 얼마나 물리적 자본과도 연결되어 있는지를 드러낸다. 기술이 발전해도, 사회가 제공하지 않으면 그 기술의 혜택은 일부에게만 돌아간다.

여성 건강권, "말"이 아닌 "접근성"의 문제

웨일즈 정부는 2023년 말 발표한 ‘여성 건강 계획’에서 낙태를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건강관리"로 규정했지만, 실질적인 추진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와 정치권(플라이드 킴루당 의원 시오네드 윌리엄스)을 중심으로, "건강권은 선택이 아닌 권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권리가 설계도 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미래학자 에이미 웹은 "디지털 헬스는 의료 시스템 자체가 바뀌는 시대"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번 웨일즈 사례는 기술 기반 미래 사회에서도 ‘정책 의지’와 ‘인프라 투자’ 없이는 기본권조차 누릴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 시스템 변화는 선언이 아닌 실행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 기술 발전이 곧 의료 평등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점, ▶ 개인이 겪는 ‘고립된 고통’은 결국 사회 전체 시스템의 반영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마련된 권리’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실천 전략이다. 기업은 이를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의 지역 편차 문제를 해결하거나, 중기 의료 공백을 메우는 원격 진료나 이동 클리닉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다. 개인은 '정치적 논의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행동의 필요성을 자각해야 한다.

미래는 기술이 아닌, 이를 균형 있게 분배할 수 있는 사회적 의지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 지역은 과연, 그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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