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와 농업 지속 가능성 위협 – REAP 프로그램의 불확실성이 농민들에게 던지는 경고
우리가 매일 밥상 위에 올리는 음식은 과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는가? 기후 위기와 화석에너지 의존으로 인한 환경 파괴가 심화되는 가운데, 친환경적이고 자립적인 농업 시스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미국 농무부가 운용해온 '농촌 재생에너지 프로그램(REAP)'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농가들의 에너지 전환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중요한 정책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REAP 프로그램을 둘러싼 혼란과 방향성 변화가 지속 가능한 농업 생태계 자체를 흔들고 있다.
미국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특히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는 농민들에게 안정적인 친환경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 적용을 넘어 식량 체계의 회복탄력성과 농민의 존엄을 지키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REAP 사태를 통해, 우리는 지속 가능한 농업이 정치적, 경제적 결정에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게 된다.
농가의 에너지 전환을 도왔던 REAP, 정치적 변화로 기능 위축
REAP는 미국 농무부 도농개발청(USDA Rural Development)이 운영하는 핵심 프로그램으로, 농가와 농촌 소규모 사업에게 에너지 효율 개선 및 재생에너지 설비 구축을 위한 보조금과 대출보증을 제공해 왔다. 2002년 출범 이래 1만9천 건 이상, 총 18억 달러가 넘는 지원이 이루어졌으며, 그중 46%가 농축산, 수산, 임업 분야에 집중되었다.
특히 태양광의 경우, 전체 REAP 프로젝트 중 무려 72%가 태양광 설비 설치에 활용되었고, 이는 농장 운영비용 절감과 탄소배출 저감에 큰 효과를 발휘해왔다. 그러나 2025년 8월, 미국 농무부는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을 발표하며, 50kW 규모 이상의 지상형 태양광 설치에 대한 보조금 우선순위 하향 조정과 외국산 태양광 장비 사용 제한 지침을 내놓았다. 이로 인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수많은 농민들은 혼란과 재정적 손해를 입었고, 이미 준비된 약 2천만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들이 보류되거나 무산됐다.
피해는 소규모 농민에게 집중…“언제 또 뒤집힐지 몰라 불안”
태양광 보급 지연은 농업현장에 직접적인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한 곡물농가에서는 REAP 지원 없이 노후한 건조기를 계속 사용해야 했고, 다른 농민은 계획했던 전환 설비의 주문을 취소하고 재정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했다. 해당 정책 변화는 **전체 태양광 관련 REAP 프로젝트 중에서도 약 4.5%(152건)**에 해당하는 대형 설비 프로젝트에 불과했으며, 대부분 농지 외곽이나 창고 인근 등 비경작지에 설치된 사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괄적인 정책 변경은 전체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신뢰를 위축시키고, 특히 에너지 자립을 통해 운영비를 절감해야 하는 중소 농가들에 더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농민 단체와 관련 기술 지원 기관들은 “각 농장의 조건과 필요에 맞는 유연한 설계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선정한 특정 기준 하나로 프로그램 전반의 틀을 바꾸는 건 농민의 주체적 에너지 전환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글로벌 공급망과 농민의 현실 사이에 낀 정책
현재 미국 내 태양광 패널의 약 85%가 수입산이며, 대부분이 중국에서 제작된다. 단기간에 국내 생산 전환이 어렵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수입 장비 사용을 제한하게 되면, REAP를 활용해 저렴한 에너지 설비 전환을 기획한 농가들 상당수가 탈락하게 된다. 결국 탄소 배출과 기후위기를 해결해야 할 농업 현장에서 오히려 고비용, 고탄소 구조가 고착화될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국제기구 FAO는 기후위기 시대 농업은 ‘에너지 효율과 재생에너지 기반 전환’을 핵심 생존 전략으로 제시하며,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적 뒷받침을 강조한다. 하지만 REAP 프로그램의 혼란 사례는 이런 ‘정부의 역할’이 오히려 불확실성과 불신을 야기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농업의 재생에너지 전환, 지금 멈출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지금의 에너지 정책은 농사를 직접 짓는 이들, 먹거리를 책임지는 이들의 현실과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는가?” 지속 가능한 농업은 더 이상 녹색 이미지의 수사가 아니다. 온실가스를 줄이고, 농민들의 생계를 보장하며, 다음 세대의 식량을 지켜내기 위한 현실적 실천이다.
우리 역시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지역 농산물 소비 확대, 유기농 및 인증 친환경 제품 선택, 농민이 주도하는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나 정책 캠페인 참여 등이 그 출발점이다. 또한 관련 다큐멘터리(예: <Food, Inc.>,
농업은 기후위기의 피해자인 동시에 해결의 주축이다. 지속 가능한 농법과 에너지 시스템을 설계하고 지지하는 것은 곧 식량 주권을 지키는 직접적인 행동이다. 더 이상 유예할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