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어린이와 기업의 연대 – 의료 사각지대와 사회적 책임의 교차점에서
소아암은 생명의 위기에 직결되는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경제적 사정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최근 디자인가구 브랜드 ‘아이엔지홈’이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후원금을 전달하며,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어떻게 제도의 틈새를 메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이 사례는 공공 복지의 한계 속에서 민간 연대의 가능성과 과제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질병보다 더 무서운 치료비 – 제도의 그늘에 남겨진 아이들
대한민국에서 소아암은 전체 암 환자 중 약 1%를 차지하지만, 이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은 결코 작지 않다. 치료 기간이 길고 재발률이 높아 의료비는 수억 원대에 이르기도 한다. 건강보험이 일부 비용을 보장하더라도, 비급여 영역이나 병원 이외의 돌봄, 교육 공백 문제는 여전히 가정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따르면 저소득 가정의 경우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 부모 한쪽이 직장을 포기하는 일이 흔해진다. 이에 따라 복지 사각지대는 더 넓어지고, 아이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사회적 고립에 빠지는 악순환에 놓이게 된다.
공공 의료 지원제도는 일정 부분 존재하나, 실제 현장에서는 ‘심사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긴급의료비지원사업, 중증소아환자 의료비지원 등 다양한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소득 수준 50~70% 이하만 해당되거나 자료 제출이 까다로워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복지제도는 있지만 신청 주체가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경우, 실질적 보호력이 무력화되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ESG와 연대의 복원력 – 기업 사회공헌의 재구성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비영리 단체와 기업의 연대는 사회안전망의 대체제가 되기도 한다. 아이엔지홈이 경기북부사랑의열매와 협력해 전달한 후원금은 수술비, 치료비, 교육비 등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직접 쓰일 예정이다. 이는 단순한 기부를 넘어 ‘지정기탁금’과 같은 구조화된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자원의 투명성과 활용도를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최근 기업들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 ESG경영, 즉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한 지속가능한 경영 전략의 일환에서 사회공헌을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채택하고 있다. 소비자 역시 제품의 품질만큼 기업의 윤리성과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흐름이 뚜렷해졌으며, 이는 ‘굿즈를 사는 것’이 ‘공감의 실천’이 되는 새로운 소비문화를 가능케 한다.
다층적 시선 – 기부와 제도 사이에서 놓인 시민의 역할
다만 시민사회 내에서는 이러한 민간 기부 활동에 대한 양가적 시선도 존재한다. “기부가 선의가 아닌 생존의 필수가 되는 현실”에 대한 자조적 인식과 함께, “왜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국가가 아닌 개인과 기업의 의무가 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 복지는 권리이지 선행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때, 공공 책임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는 지속가능한 대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따라야 한다.
한편 이러한 활동이 지역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에 집중되기 쉬운 의료자원과 복지 자원을 비수도권으로 확산하는 데 있어 기업 후원은 중요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의료 인프라 자체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후원이 있더라도 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현실도 반드시 병행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결이 다른 연대, 같은 목표
‘아이엔지홈의 기부’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지만, 이 작은 움직임은 의료비, 정보 접근성, 심리 지원 등 여러 층위에서 국가 제도가 미처 손닿지 못한 부분들을 채워나가는 민간의 잠재력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 역할이 지속 가능하고 체계적인 제도개선과 연계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피로감과 의존성만을 남길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가장 취약한 구성원이 치료받을 권리를 공정하게 누리는 사회인가?’ 그리고 그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현행 제도와 공동체의 연대가 체계적으로 만나도록 설계하는 일, 그 안에서 개인은 자신의 위치에서 가능한 실천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 아동병원에 정기 기부를 시작하거나, 사회복지 관련 법안 개정 청원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기업 소비를 통해 윤리적 메시지를 지지하는 행동 등이 그것이다.
작은 연대는 결국 큰 구조를 흔든다. 그리고 그것이 제도보다 먼저 사람을 기억하는 사회를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