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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만든 홍보의 진화

배우들이 만든 홍보의 진화

할리우드 프레스 투어의 재정의 – 'Materialists'가 보여주는 배우 중심 홍보 전략의 진화와 문화적 파급력

한때 스타의 매력이 미디어 시대를 지배했던 시절이 있었다. 2010년대 초, 제니퍼 로렌스가 "미국의 연인"으로 등극하고, 테일러 스위프트와 칼리 클로스의 파격적인 우정 데이트가 유행을 탔던 시대다. 당시에 ‘리얼함’이라는 코드가 대중문화의 중심에 떠올랐고, 스타는 스크린 밖에서도 자신의 서사를 영리하게 펼쳐야 더 대중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팬데믹, #미투 운동, 작가 파업 등 문화산업을 뒤흔든 격변기를 지나며 할리우드는 일종의 '정서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스타는 더 이상 스타답지 않았고, 인터뷰는 홍보가 아닌 사과나 해명 무대가 되어버렸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영화 (감독 셀린 송)의 프레스 투어는 오래된 미디어 전략의 귀환이자 재해석이다. 다코타 존슨, 크리스 에반스, 페드로 파스칼—세 배우가 유쾌한 케미스트리로 빚어낸 일련의 인터뷰 영상은 단지 영화를 알리는 행위를 넘어서, '엔터테인먼트 자체'로 기능하며 새로운 배우 중심 홍보 전략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1. 배우의 서사가 곧 마케팅이 되는 시대

의 프레스 투어는 단순한 언론을 통한 정보 전달이 아니다. 각기 다른 배경과 상징 자본을 가진 세 배우—페미니즘 논쟁의 중심에서 굳건히 서온 다코타 존슨, 마블 히어로로 대중적 신뢰를 얻은 크리스 에반스, 디지털 밈 문화의 총아가 된 페드로 파스칼—는 각자의 캐릭터성으로 대담한 농담, 조롱, 사적인 디테일을 공유함으로써 팬들에게 마치 ‘시트콤 에피소드’와 같은 서사를 선사한다.

이러한 전략은 **문화학자 리처드 다이어(Richard Dyer)**가 주장한 바, 스타는 이미지 너머에 서사와 상징을 지닌 ‘텍스트’라는 개념을 고스란히 구현한다. 배우들의 브랜드화된 개인성이 인터뷰라는 장르를 차용해 서사를 생성하고, 이 서사 자체가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긴다.

2. 쇠퇴한 할리우드 인터뷰 문화 속 작은 반란

팬데믹 이후 주요 프랜차이즈 영화들의 인터뷰는 종종 ‘위기 홍보’의 현장이 되었다. , , 등에 뒤따른 실망스러운 프로모션들은 오히려 영화의 단점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반면, 팀의 유쾌하고 진심 어린 진행은 오히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이들은 인터뷰 질문을 곧이곧대로 답하지 않고, 연기력과 유머를 동원해 새로운 ‘이야기 공간’을 창조한다.

이는 임프라비제이션(improvisation)의 윤리로 회귀한 것이다. 배우 훈련의 기본 중 하나인 임프로브는 사실성, 순발력,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다. 다코타 존슨과 동료들은 바로 이 능력을 바탕으로, 기존 미디어 프레임을 유쾌하게 전복한다. 이는 엔터테인먼트는 정돈된 정보가 아닌, ‘미지의 진실을 향한 즐거운 불확실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3. 콘텐츠가 아닌 ‘케미’가 주도하는 SNS 시대의 문화 소비

홍보 영상에는 별다른 영화 정보가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해당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배우들 사이의 농담, 시선, 몸짓이다. 이는 밈(meme) 문화와 뉴미디어 리터러시가 지배하는 현재의 콘텐츠 소비 방식에 부합한다. 짧고 직관적인 케미스트리 중심 클립은 '공감 가능한 순간'을 담아 유통되고, 팬들은 이를 반복 소비하거나 2차 창작으로 확산시킨다.

바야흐로 우리는 '영화'보다 '프레스 투어 하이라이트 영상'을 먼저 보고 영화 예매를 고려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마셜 맥루언이 말한 “미디어가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전언은 이 현상에서도 유효하다. 콘텐츠를 낳는 플랫폼보다, 전달 방식을 결정하는 인물과 포맷이 소비를 이끄는 셈이다.

4. 대중성, 유머, 그리고 감정 공유의 재발견

무거운 이슈와 과잉 연출로 피로감을 안기던 할리우드 스타마케팅은 의 사례를 통해 리셋되고 있다. 유머, 가벼움, 장난기 같은 ‘비생산적인 서브텍스트’들이 오히려 관객의 감정적 지지를 동원하고, 영화 외부의 문화 담론으로 확장된다.

이는 버지니아 울프가 강조한 ‘일상의 자유로움(freedom of triviality)’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거창한 선언이나 깊이 있는 이슈 못지않게, “친한 배우끼리 농담을 주고받는 순간”이 우리에게 회복적 감정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감정적 레저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결국 의 포인트는 영화 그 자체라기보다, 그 주변부에서 구성되는 새로운 관계의 드라마이자, 관객을 감정적 공모자로 끌어들이는 제스처다.

이러한 문화적 전략은 앞으로 우리 영화산업과 미디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배우와 대중 사이 담론 구조의 재편 가능성은? 그리고 이처럼 유쾌한 대화와 상호작용은 어떤 사회적 피로를 치유하고 있는 것일까?

요컨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먼저 관련 인터뷰와 영상 클립들을 직접 찾아 감상해보자. 단지 웃기다는 감상에 그치지 말고, 그들이 어떻게 말하고 서로 반응하는지, 어떤 맥락에서 유머를 구사하는지 찬찬히 살펴보라. 그다음, 관람한 영화와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연결지어 해석해보는 것도 좋다. 리뷰나 SNS 토론에 참여하거나, 자신만의 프레스 투어 이상형 콘텐츠를 상상하는 것도 의미 있는 문화적 연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유쾌한 순간들에서도 심층적 문화 경험을 끌어낼 수 있는 감식안과 상상력을 갖춘, 주체적인 문화 향유자가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영화보다 더 흥미로운 순간에 주목하는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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