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프로덕션 도모, 실버마이크로 여는 고령사회 예술복지

고령사회와 문화권의 재구성 – ‘실버마이크’가 던지는 예술의 질문

고령사회 진입은 단순한 인구 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시스템과 가치관을 다시 점검해야 할 계기이기도 하다. 2025년에도 계속되는 ‘문화가 있는 날 실버마이크 수도·강원권’ 거리공연 프로젝트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목할 만한 문화적 실험이자 복지적 제안이다. 고령층이 일방적인 수혜자가 아니라 스스로 사회적 기여자이자 문화 주체로 등장하는 이 흐름은 예술과 세대, 복지의 경계를 다시 묻는다.

시니어, 거리의 예술가로 다시 등장하다

실버마이크 프로젝트는 60세 이상 시니어 아티스트들이 도심에서 음악, 퍼포먼스, 연주를 통해 시민과 만나는 문화복지형 프로그램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역문화진흥원’이 주최·주관하고, 현장 운영은 사회적 기업인 문화프로덕션 도모가 맡는다.

프로젝트의 의미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고령층이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의 주체로 재조명된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다시 떨리는 설렘과 순수함’이라는 2025년 수도강원권 슬로건처럼, 오랜 생의 경험과 감정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울림을 준다. ‘치유’, ‘공감’, ‘세대 연결’ 같은 키워드는 이제 나이와 무관한 문화적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세대를 잇는 거리공연, 제도 너머의 실천

실버마이크 행사는 제도적 복지의 빈틈을 문화로 메우는 실천이기도 하다. 노인복지의 핵심 과제가 단순 생계지원에서 '사회적 참여와 소속감'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예라 할 수 있다. 은퇴 후 역할 상실과 소외감은 노인 자살률의 상승이라는 심각한 문제로 연결되는데, 이는 한국이 OECD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노인 자살률(2022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41.8명, OECD 평균은 19.2명)을 기록하고 있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이런 구조에서 실버마이크는 ‘생산적 고령화’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사례다. 시니어 아티스트들은 단지 위로받기보다, 자신의 예술로 타인을 위로하고 감동을 주는 존재로 재정의된다. 세대 간 소통의 장으로서 거리공연이 갖는 공공성은 태생적으로 계급이나 세대를 넘나드는 특성이 있어, 정형화된 제도보다 훨씬 유연한 접근이 가능하다.

당사자 중심 복지 vs. 일률적 정책 설계의 간극

문제는 이 모든 흐름이 제도 밖의 ‘주도적인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기초연금, 일자리 지원 같은 노인 정책은 여전히 수동적 복지 중심이며, 문화복지 영역은 제한적 재정과 낮은 정책 우선순위로 인해 지역 간 격차도 크다. 예산 배분 구조에서 공연 예술 활동은 노인 체육이나 의료 서비스보다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 북유럽 일부 국가들에서는 사회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요소로 고령자 문화 활동의 정례화·예산화가 제도적 기반을 얻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시는 고령자 문화예산을 별도 편성해 도서관, 커뮤니티 센터에서 정기 공연을 유치하고 있으며, 일본의 ‘활력 있는 노인 예술단’은 행정 예산이 지원되는 공식 팀이다. 한국도 이런 제도적 보완 없이는 실버마이크와 같은 모델이 일회적 이벤트로 귀결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지역 축제와의 연계, 도심 공간의 재정의

이번 실버마이크가 지역 축제와 연계하여 진행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축제와 문화 예술의 접점에서 고령 아티스트가 등장하는 모습은 공간의 사회적 성격을 재정의한다. 상업적 소비 중심의 축제를 ‘세대 공존의 장’으로 전환시킨 기능도 있으며, 새로운 도시재생모델로서의 가능성을 열기도 한다.

특히 서울함공원, 마로니에공원, 춘천 김유정문학촌 등 근대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공간이 시니어 아티스트의 무대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상징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이는 지역 기억과 연령경험의 결합을 통해 장소가 단순한 물리적 배경을 넘어서 문화적 의미 공간으로 재생산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풍성한 일정 속에서 실버마이크는 질문을 던진다. “노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복지는 보호가 아닌 참여가 될 수 있는가?”, “도시는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제도는 아직 실버 문화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하고 있지만, 예술은 이미 응답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문화복지를 위해 이제 정책은 예술과 손잡고, 참여의 길을 보장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또한 지역사회, 기업, 시민 모두가 세대를 초월한 예술 커뮤니티 형성에 함께해야 한다. 거리는 무대가 되었다. 관객이자 주인인 우리는, 이 무대를 어떤 사회적 메시지로 채워야 할지 자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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