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철학’으로 다시 읽는 지금 – 밀의 공리주의가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리는 다시 묻는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라고. 소비의 증가도, 빠른 기술의 진보도, 개인화된 삶의 속도도 우리 영혼의 공백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래서일까.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많아진다. 문예출판사가 최근 새 텍스트로 펴낸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는 그러한 흐름 위에 있다. 단지 고전을 재출간한 것이 아니다. ‘행복 철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우리 시대의 방향 감각을 다시 세우도록 도와주는 문화적 사건이다.
고전은 누군가의 인생을 가만히 흔든다
밀의 『공리주의』는 흔히 철학 교양서로 언급되지만, 사실 이 책은 도덕과 윤리, 나아가 공동체적 존재로서 인간이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내적 성찰에 가깝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낫다”는 그의 말은 쾌락의 질에도 서열이 있다는, 삶에 대한 격조 있는 고민의 시작이다. 대중적으로 이해되기 힘든 윤리 철학을 소화하기 쉽게 풀어낸 것은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의 성실한 번역 덕분이다. 각 장마다 삽입된 해설과 본문 이해를 돕는 소제목들은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고전과의 간극을 줄여준다.
이 책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번역자가 부제로 단 ‘행복 철학’이라는 말이다. 철학은 이상을 논하지만, 밀은 행복이라는 가장 실존적인 가치로 철학을 끌어내린다. 인간의 행동은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흘러야 하며, 그런 행위가 곧 옳음이라는 기준이 공리주의의 본질이다.
무게 있게 살아간다는 것 – 현대의 공리주의로서의 삶
이 철학이 오늘날 유의미한 이유는, 밀의 공리주의가 단순히 ‘다수의 행복’만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측정 불가능한 감정의 총합’을 낭만적으로 포장한 이상이 아니라, 불이익을 받는 사람의 입장까지 고려하는 윤리적 총체성을 가진 개념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개인의 자유나 행복이 때로는 집단 이익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당할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밀의 사상은 브레이크 없는 효율 사회의 속도에 제동을 건다.
그리고 그 시선은 오늘,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들, 가령 기후 위기에서 고통받는 비인간 생물이나 미래 세대의 권리 문제까지 확장되고 있다. 공리주의가 시작된 19세기 말에는 상상할 수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비인간 존재의 행복’도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공리주의가 낡은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정교해져야 할 실천 철학임을 상기시키는 흐름이다.
행복은 나와 너의 거리 속에 있다
책장을 덮고 난 후, 문득 질문이 남는다. ‘나는 오늘 어떤 작은 결정 속에서 나와 타인의 행복을 더했는가’라는. 문화 콘텐츠가 우리 일상에 남기는 감정의 잔향 가운데, 이런 질문이 따뜻하게 스며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책 한 권이 주는 선물일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많은 선택들로 채워진다. 커피를 어느 브랜드에서 살지, 어떤 소식을 클릭할지, 누구에게 먼저 연락할지. 그 작고 반복되는 삶의 행위들이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그것이 나의 삶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공동의 행복을 향한 것인지 한 번쯤 멈춰 보는 일—그것이 ‘행복 철학’을 읽는 진짜 이유다.
오늘, 고전을 한 페이지 펼쳐보는 일로부터 나의 윤리가 시작될 수 있다. 책상 한 켠에 밀의 문장이 놓여 있다면, 그 문장과 마주한 당신의 오늘도 조금 더 단단해질 것이다.
📌 지금 실천할 수 있는 문화적 감상법:
- 하루의 끝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오늘 내가 더한 행복은 무엇이었는가?”
- 친구와 책 한 권을 나누고, ‘공리’에 대해 토론해보자.
- SNS에 흘러넘치는 감정들 사이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우리의 가치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느껴보자.
고전은 지금을 말하는 언어이다. ‘행복’을 시대의 언어로 다시 묻는 밀의 문장은, 결국 우리를 더 윤리적이고도 감각적인 존재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