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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라운지, 장애예술 표현의 전환점

드라마라운지, 장애예술 표현의 전환점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의 전환점 – 표현의 권리와 참여의 공간을 다시 묻다

장애인의 문화예술 참여를 ‘복지’나 ‘치료’의 수단이 아닌 ‘표현’과 ‘존재’의 방식으로 접근하는 시도가 드물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 극단 드라마라운지가 암사재활원과 충현복지관에서 성료한 ‘헌터 하트비트 메소드(Hunter Heartbeat Method)’ 연극 프로그램은 이러한 전환의 한 사례다. 발화에 제한이 있는 발달장애인이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몸짓과 놀이로 표현하는 이 접근은 단순한 연극 교육 이상의 메시지를 던진다. 제도와 현장의 간극 속에서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살펴볼 시점이다.

놀이와 문학이 만나는 교차점 – 헌터 하트비트의 교육 철학

헌터 하트비트 메소드는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배우 켈리 헌터가 자폐 아동들과의 연극 수업을 통해 개발한 방법이다. 사운드, 리듬, 감정 표현을 반복 가능한 놀이로 구성해 언어가 자유롭지 않아도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아왔다. 이 방식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자기 표현의 기회를 확장하며, 감정적 동기와 사회적 상호작용의 훈련이 동시에 이뤄지는 특장을 지닌다.

극단 드라마라운지는 이 메소드를 도입해 서울 지역의 복지기관과 연계한 장애인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특히 방과후활동이나 직업훈련 위주의 기존 프로그램과 차별화돼, ‘창작 주체’로서의 장애인 정체성을 존중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는 단순한 문화 향유를 넘어 ‘삶을 표현하는 권리’라는 문화권 차원의 접근이라 볼 수 있다.

지원사업과 제도의 흐름 – 가능성과 한계

이 사업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주관하는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일환이다. 해당 제도는 2020년대 들어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장기 계획에 따라 꾸준히 확대 적용되고 있으며, 2년 연속 지원 구조를 통해 안정적 운영도 도모하고 있다. 다만 현장 단체들이 느끼는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지방 거주자나 중증장애인의 접근성, 장기 교육비 확보의 제도적 유연성 부족, 현행 복지 시스템과의 연동 미비 등이 그것이다.

예컨대 많은 문화예술교육 사업은 주간 센터 이용자나 보호자가 동반 가능한 시설 중심으로 기획된다. 이는 ‘돌봄 가능한 장애인’만이 참여 가능한 구조를 만들며, 문화권에 있어 보이지 않는 선별 작용을 낳기도 한다. 문화접근권을 장애 유형과 생활환경의 차이를 고려한 맞춤형 제도로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 지점에서 제기된다.

예술적 만남이 만드는 사회적 변화

현장 참여자들의 반응은 제도나 형식의 한계를 넘어선다. 발달장애 청소년이 감정 표현 놀이로 마음을 열고, 가족이 무대 위 자녀의 모습을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한다. 교사나 예술가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참여자 주도적 이야기 구성으로 진행된 이 연극 프로그램은, 장애인의 ‘훈련된 대상’이 아닌 ‘문화적 주체’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UNESCO나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에서도 강조되듯, 문화예술 참여가 장애인의 권리 실현의 일환임을 재확인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문화예술교육을 공교육 과정에 연계하거나, 지역복지와 예술인재풀 간 통합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그 참여를 제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핀란드와 네덜란드는 복지와 문화, 교육이 긴밀히 연결돼 있으며, 장애인 맞춤형 커뮤니티 아트 프로그램을 공공미술관과 연계하여 진행하기도 한다. 이와 비교했을 때 우리는 여전히 '프로젝트' 단위의 일시적 사업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극이 아니라 권리다 – 지속가능한 문화교육을 위한 시선 전환

이 사례는 질문을 던진다. "장애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 사회인가?" 교육과 문화예술의 만남이 그저 여가의 확장이 아닌, 표현과 연결의 통로가 되기 위해선 꾸준한 제도 개선과 인식 변화가 요구된다. 특히 장애인 복지와 문화예산 간 협업 기조 강화, 지역 단위 문화예술 거점 확대, 장애인 예술가와 강사의 전문성 양성 등이 병행될 때 비로소 장애 예술인의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무대 위의 장면들은 단지 연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감정의 제스처였고, 시선의 교감이었다. 시민사회가 이런 이야기를 기울여 듣고 존중하는 문화, 예술가들이 이러한 실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오늘의 장면이 내일의 구조가 되고, 한 사람의 경험이 공동체의 기준이 되는 사회. 장애인의 문화예술 참여는 ‘선택이 아닌 권리’라는 인식이 정착되는 지점에서 우리 사회가 향해야 할 방향이 보인다. 시민과 문화기관, 교육자와 정책 입안자들이 함께 고민할 시점이다. 어떤 이야기들이 아직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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