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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SUN, 사랑을 묻는 철학수필

도서출판 SUN, 사랑을 묻는 철학수필

사유로 길어 올린 사랑의 언어들 – ‘인간·철학·수필 7’이 건네는 깊은 질문

빠르게 스크롤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받는 시대에 ‘수필’이라는 장르는 다소 낯설고 느린 풍경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느림에는 언제나 사유의 깊이가 깃든 법이다. 최근 도서출판 SUN에서 출간된 『인간·철학·수필 7』은 15인의 철수회(哲隨會) 회원들이 써내려간 철학수필집으로, 삶과 인간, 사랑과 존재의 본질에 대해 깊이 묻는 책이다. 이 책은 문학적 서정과 철학적 논변이 맞닿은 ‘사유의 현장’이자, 시대를 마주하는 한 개인의 내면 여행 기록이다.

사랑이라는 오래된 질문, 다시 묻다

책은 세 갈래의 흐름 속에서 독자를 인도한다. 그 첫 번째는 사랑이다. 다루는 대상은 흔하디흔한 사랑이지만, 시각은 결코 흔하지 않다. 엄정식 교수를 비롯한 필자들은 사랑을 존재론, 윤리학, 철학사상, 개인적 체험이라는 다층적 질감 속에서 길어 올린다. 사랑은 여기서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 중 하나로 그려진다.

플라톤에게 사랑은 영혼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동력이고, 사르트르에게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자아의 경합이며, 일상의 단상 속에선 어머니의 자장가, 병실의 손길, 봄밤의 체취로 녹아든다. 독자는 이 글들을 통해 “내가 품고 있는 사랑의 얼굴은 어떤 형태일까?”를 조용히 자문하게 된다.

철학과 문학 사이,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는 실험

두 번째 흐름은 철학과 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글들이다. 흄이나 화이트헤드, 키케로, 메를로퐁티 등 고전 사상가들의 사유를 문학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방식은 지적 긴장감과 감성 모두를 자극한다. 수필이라는 유연한 형식 덕분에 한 편의 논문보다 더 마음 깊숙이 침투하며, 철학이 인간의 삶과 얼마나 가까운지 일깨운다.

여기서는 ‘생각’이 곧 ‘살아내는 것’이란 사실을 피부로 배우게 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이 지닌 인간적 자유의 역설이나, 횔덜린 시에 스민 신성과 고독의 무게에서도 독자는 고전의 사유가 오늘 우리의 삶과 어떻게 교차될 수 있는지를 체험한다.

삶의 언어를 회복하는 자유수필의 힘

세 번째 흐름인 자유 수필은 특별하다. 병상에서의 사유, 골목의 기억, 생의 이면을 직면한 이야기들이 문장마다 저마다 다른 체온을 갖고 울린다. 이 수필들은 화려한 수사 없이도 정직하고 묵직하다. 연륜에서 흘러나온 언어는 독자에게 “당신의 삶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느냐”고 조심스레 물으며, 삶 자체가 철학이고 문학일 수 있다는 믿음을 되새기게 한다.

정진희의 ‘바리데기처럼’이나 이혜연의 ‘봄밤’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곁에 두어야 할 어떤 섬세함—애도, 이해, 기다림—이 스며 있다. 한 사람의 체험이지만, 우리 모두의 감정 지형을 건드린다.

다성性의 아름다움, 하나의 울림으로 수렴되는 감각

『인간·철학·수필 7』이 돋보이는 지점은 참여 작가 각각의 문체와 사유가 달라도 그것이 모여 하나의 공명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철학의 묵직함’과 ‘수필의 가벼움’이 중심과 주변을 오가며, 독서를 통해 곧 자기 성찰이라는 길로 이어진다. 이 책은 결국, 말하지 않아도 마음에 남는 질문 하나를 남기는 책이다.

지금 우리가 감각해야 할 문화는 무엇일까요? 이 책은 우리에게 “잠시 멈춰, 사는 삶을 쓰는 문장으로 사유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내면의 문답은, 어느새 자신만의 철학이 됩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작습니다. 문 닫힌 책상 위에 이 책을 펼쳐보는 일, 문득 스쳐 지나간 사랑 기억을 사유의 틀 안에 떠올려 보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 짧은 사랑의 기억 하나를 글로 남겨보는 건 어떨까요? 철학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렇게 스스로를 다시 쓰는 힘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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