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꽃은 어디에 피는가 – 《롬바르드 꽃길의 수국》이 던지는 삶의 겸허한 질문
길은 언제나 시작보다 끝이 미지의 신비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를 한발 한발 나아가는 삶들이 있습니다. 김덕환 작가의 수필집 《롬바르드 꽃길의 수국》은 23년간 미국 땅을 밟고 걸은 이민자의 발자국 위에 피어난, 조용하지만 단단한 꽃송이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 꽃은 눈부시게 화려하지 않지만, 그보다 오래 남는 향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 책은 샌프란시스코의 구불구불한 언덕길 ‘롬바르드 스트리트’에서 피어난 수국에서 시작됩니다. 그 풍경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저자의 삶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다시 피어나는 시간과 공간의 풍경입니다. 삶의 꽃은 고단한 경사 위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이 수국은 말없이 증언합니다.
― 실리콘밸리의 새벽 공기 속에서 되묻는 자아
수필집 곳곳에는 기업 지점장, 공군 장교, 이민자, 교육자라는 다양한 사회적 역할들 속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획득했는지를 곱씹는 문장들이 이어집니다. 특히 실리콘밸리 출근길의 이른 새벽, 유리 커튼 월 너머로 비치는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한국의 아침처럼 바쁘지만 어딘가 이국적인 고요함도 머금고 있지요. 그 속에서 작가는 ‘나는 지금 이곳에 왜 있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습니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두 개의 문화적 기원의 경계에서 그는 매번 자신의 정체성을 실험합니다. 그것은 마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대륙을 바라보는 시선처럼, 외롭지만 탁 트인 시선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이중적 구도 속에 살아갑니다. '나'다운 삶은 무엇인가, 그 속에서 나의 뿌리는 어디인가.
― 수필이라는 형식에 담긴 삶의 리듬
김덕환 작가의 문장은 과장되지 않고 담백합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삶의 무게를 더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현대인의 언어가 짧고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쳐 있을 때, 이 책은 수필이라는 오래된 형식을 통해 느림과 다시 읽기의 가치를 복원하고 있습니다. 수필은 생각의 여백을 줍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회고인 동시에, 독자 자신에게 닿아오는 사적인 질문입니다.
“나는 내 삶을 빛나도록 가꾸고 있는가?”
이 물음은 흘려보낼 수 없는 무게를 가집니다. 누구나 각자의 ‘이민’의 상황 속에 놓여있습니다. 비단 지리적 이동이 아니더라도, 낯선 환경, 어긋난 관계, 익숙함으로부터의 탈피는 모두 어떤 ‘떠남’의 형태입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우리는 결국, 피어나야 할 자기만의 수국을 찾아야 합니다.
―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기서사’의 귀환
지금의 문화 트렌드는 다시 ‘개인의 서사’로 되돌아오는 중입니다. 유튜브와 브이로그, 에세이 붐, 다큐형 콘텐츠 등은 거대 서사와 정보 중심적 콘텐츠에 기울어졌던 대중문화를 한층 더 섬세하고 자기 반영적으로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롬바르드 꽃길의 수국》은 이 흐름에 서서히 합류합니다. 하지만 그 결은 다릅니다. 자기고백적이지만 관조적이고, 감정적이지만 이성적인 뒤안길을 걷습니다.
그것은 삶이 곧 문학임을 증명하는 방식이며, 일상의 감정을 기록한다는 것의 위대함에 대해 우리를 눈뜨게 합니다.
― 지금, 내 삶의 수국은 어디쯤 피고 있을까?
당신이 지금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 한켠, 혹은 조금 일찍 깬 주말 새벽의 정적 속에서, 이 책을 펼쳐보기를 권합니다. 중요한 건 화려한 이민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절제된 회복의 언어를 만나는 일입니다.
다정한 수국 한 송이처럼, 우리가 겪은 삶의 상흔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언어가 필요할 때, 이 책은 좋은 길동무가 됩니다.
오늘 당신의 ‘롬바르드’는 어디인가?
그곳에서 당신은 어떤 수국을 피우고 있는가?
✨ 작은 실천을 위한 제안
- 가장 최근에 삶에 대해 ‘왜’라고 질문한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 자신에게 작은 수필 한 편을 써보세요. 주제는 “내가 지나온 길들”.
- 흘러간 하루 속에서, ‘어렴풋이 남은 감정들’을 놓치지 않는 감각을 길러보세요.
그 속에서 삶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