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나눔과 사회적 연대의 재발견 – 헌혈증 기부가 말해주는 공동체의 가능성
헌혈증은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다. 특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어린 소아암 환자들에게는 생명 그 자체일 수 있다. 전북지역의 한 공공기관이 3년째 이어오고 있는 헌혈증 기부는 한 지역 사회가 어떻게 '나눔'이라는 이름 아래 더 건강하게 결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자발적 실천은 개인을 넘어 제도와 세대를 잇는 가교이며, 공공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한 방식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의 사회 참여, 행정의 확장인가 시민적 책임인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전북도본부는 본래 축산물 안전과 검역이라는 '기술 중심'의 행정 기능을 담당해왔다. 그러한 기관이 소아암 환아를 위한 헌혈증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이미지 제고 차원을 넘어 공공기관의 새로운 역할 변화를 시사한다. 최근 OECD나 UN의 공공부문 평가 기준에서 강조되고 있는 '사회적 책임성과 지역 사회 협력' 요구와 맞물려, 행정조직도 단지 행정 효율성만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헌혈 인식의 불균형, 기부의 사회적 함의
대한적십자사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10·20대 중심이던 헌혈 참여율은 감소 추세이며, 특히 코로나19 이후에는 자발적 헌혈보다 업체 중심의 단체 헌혈에 의존하게 되었다. 반면, 헌혈 수요는 지속되거나 증가하고 있다. 소아암 환자 대부분은 반복적 수혈이 필수 치료 요소다. 결국 헌혈이라는 공공 자원의 공급과 수요 간 비대칭은 환자와 가족에게 엄청난 비용과 피로를 초래한다.
이 지점에서 헌혈증 기부는 단순한 자선 행위가 아닌 공공 자원 흐름의 재조정에 기여한다. 특히 자발적 헌혈 문화가 약해지고 있는 현상에서 공공기관, 기업, 시민단체의 연계는 기존 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미시적 문제를 보완해준다.
지역 공동체와 생명 윤리의 실천 방식
지역 기반의 공공기관이 주도한 헌혈증 기부는 중앙 중심 복지에서 벗어난 생활 밀착형 복지 모델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중앙정부 주도 복지제도가 포함하지 못하는 '틈새'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 틈을 메우는 데에는 지역 단체 또는 민·관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와 같은 참여는 기부금이 아닌 '생명 자원 공유'라는 점에서도 윤리적 깊이가 다르다.
정책 흐름의 측면에서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문화재단 등 기존 기부 시스템이 기금 중심으로 흘러가는 반면, 헌혈증은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개인적 기여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순 기부 접근을 넘어, 공공자원 속 개인 실천의 가시적 구현이라는 점은 시민 참여의 새로운 모델로도 주목할 수 있다.
공공성과 실천 사이의 접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
이 사례는 우리 사회에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공공기관은 단지 ‘서비스 제공자’여야 하는가?", "헌혈과 같은 생명 자원 문제에 개인 참여 외에 어떤 제도적 장치가 더 필요할까?" 또는 "지역 사회가 스스로 설계해 실행하는 복지 모델이 중앙정부 못지않게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등이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마주한 복지의 형태는 점점 더 ‘행정’보다는 ‘관계’로 재편되고 있으며, 이행력은 법보다 공동체의 지속성과 신뢰에서 비롯된다.
마무리하며, 앞으로 고려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은 학교, 기업, 종교단체, 동호회 등 비공식 조직이 중심이 된 자발적 생명 나눔 체계의 확대다. 현대 사회는 제도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공동체적 감각을 기반으로 실천하는 시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공공성과 개인 실천 사이, 우리는 어떤 균형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 해답은 이미 일상 속 작은 실천들 속에 녹아들고 있는지도 모른다.